[영화]정승혜가 쓰고 그린 ‘한국영화 말말말’

  • 입력 2002년 12월 11일 16시 26분



올해 한국 영화계는 유난히 파란만장했고 위기도 많았다.

월드컵 기간에 개봉해 피해를 본 영화의 주인들은 텅 빈 극장에 속이 상해도 밤이면 승리의 응원으로 쓰디쓴 소주를 마셔야 했다.

영화인들에게는 “애사심이냐, 애국심이냐”를 놓고 갈등을 해야 했던 피눈물의 시기였다. “박지성, 니 애는 내가 낳는다” 등 인상적인 플래카드를 들고 눈물을 흘리던 소녀들, 가수로 거듭난 미스 월드컵 미나까지 온 국민이 영화스타에서 스포츠 관련 스타로 눈을 돌린 유난스러운 해이기도 했다. 무릎을 치게 되는, 혹은 가슴 아픈 말들로 가득했던 올해의 영화계를 돌아본다.

# 아직도 끝나지 않은 ‘소송중’?

'오아시스'
지독한 배우들, 더 지독한 감독이 만나 정말 찍는 동안 아주 징그러웠다
'성냥팔이소녀의 재림'
제작비 100억 건지려면 성냥 얼마나 팔아야 하나
박중훈
할리우드 진출했으니 캐스팅 하려면 달러로 얼마죠?
장동건
'해안선' 개런티 적지만 올해 부수입이 가장 짭짤했어요.
김상진감독
제가 좀 만들죠? '광복절 특사' 제 작품이에요.

‘친구냐, 웬수냐’ ‘지명수배중’ ‘공갈협박’ 등 원색적인 말들로 “가까이 하려 했으나 멀어진 벗”이 되어버린 영화 ‘친구’의 팀들은 지그재그 복잡한 소송에 걸리는 아픔을 겪으며 그 어떤 영화보다 많은 말들을 남겼다. “친구 때문에 빛도 보고 어둠도 보았다”는 말을 한 곽경택 감독의 심경, “출국금지자 라는 말로 대문짝만하게 신문의 1면을 장식했으니 가문의 영광”이라던 코리아 픽처스 김동주 대표의 농담…. 김대표는 입만 열면 거의 어록이 되는 말을 하기로 유명하다. “문제가 있으니 영화 ‘친구’지, 아니면 비디오 ‘침구’게?” “소송에 익숙해진 나, 별일 없으면 너무 불안해, 난 소송없인 못살아” 등의 너스레로 주변을 웃겼지만 “올해는 내게 설상가상의 해였다”고 현실의 고단함을 토로했다. 그는 현재 버젓이 해외출장 중인데 “해외도피죄”가 적용되나 안 되나? 또 ‘친구’의 제작자인 석명홍 대표는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최대한 낮추고 또 낮추며 살련다”고 한해를 정리했다.

“저, 언젠가는 꼭 장희빈을 하고 싶어서 귀도 안 뚫었거든요”라고 했던 김혜수와 명필름의 ‘바람난 가족’ 분쟁은 명필름이 여배우 문소리를 캐스팅한 뒤 화해의 악수로 잘 마무리됐다. 2002년이 아마도 그들에겐 그 어떤 사람들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한해였을 것이다.

# 블록버스터 수난, 장인정신 성공‘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영화사상 가장 비싼 제작비와 오랜 제작기간을 투자한 대작이라 당연한 기대와 궁금증, 무성한 소문에 시달렸다. “흥행 참패의 대명사”가 된 이 영화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앙”으로 더 많이 불렸고, 개봉된 뒤 “100억원어치 성냥을 팔려면 얼마나 팔아야 하나” 같은 부정적인 유머들과 “라이터를 켜고 있는데 성냥을 팔고 있으니 되겠느냐?”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실제로 소녀는 성냥을 팔지 않는다…”며 제목에서부터 배반을 당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요즘 영화는 배우가 크랭크인하고 컴퓨터 그래픽이 개봉시킨다”고 말을 할 정도로 올해는 수많은 영화에 화려한 특수 효과가 쓰였지만, 그런 영화 중 하나인 ‘예스터데이’도 극장에서 조용히 사라졌고, ‘아 유 레디’는 공개되자마자 “자, 실망할 마음의 준비는 됐나요?”라는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만 했다. 이후 제작사나 투자사들은 위기를 느끼며 “이제 제작비의 거품을 조절 할 때가 왔다”는 자가 진단을 서둘렀다.

요즘 충무로에서는 제작비로 빵을 사먹은 것도 아닌데 죄책감에 시달리며 “100신을 80신으로 줄여라”는 시나리오 수정 작업 주문이 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충무로로 흘러드는 돈의 흐름을 좇아라”가 유행이더니 요즘은 사방에서 “재테크가 아닌 빚테크”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대한민국 할머니들을 최고의 CF모델로 등장시킨 ‘집으로…’나 일흔의 뜨거운 사랑이야기로 당당히 전국 극장에 간판을 붙인 ‘죽어도 좋아’는 2002년을 특별하게 생각하게 했다.

“지독한 배우들, 더 지독한 감독이 만나 정말 찍는 동안 아주 징그러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오아시스’팀은 국내는 물론 해외 영화제의 잇단 초청으로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욱 많은 바쁜 한 해를 보냈다. 거기에 ‘취화선’의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은 한국영화에 한 획을 긋는 에너지로 자부심을 주었다. “남이 잘되면 ‘운도 좋아’하고 내가 잘되면 ‘실력이야’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영화인들의 이기심에 일침을 가한 진정한 노력과 실력의 영화들이 성가를 올린 것도 올해의 값진 수확이다.

# ‘오버 맨’들의 유쾌한 말, 말, 말

‘공공의 적’의 강우석 감독은 “별을 5개밖에 안주네? 내 영화가 재미 없니?”라며 7년째 부동의 ‘충무로 파워 1인자’다운 자존심 유머를 발휘했다.

“제가 영화를 좀 만들잖아요? 이 영화 제가 만들었답니다!”

‘광복절 특사’의 개봉날, 극장 앞 광장 한가운데 서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오버맨’ 김상진 감독의 말이다. 그는 주변을 즐겁게 해주는 웃음 바이러스를 자신의 영화에 담아내는 유쾌한 감독이다.

‘찰리의 진실’로 할리우드로 진출한 배우 박중훈이 연이어 할리우드의 프로포즈를 받고 있는 것을 두고 “그러니까 이제 박중훈씨를 캐스팅하려면 달러로 얼마래요?”라며 걱정스레 묻는 사람들도 있다.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에 최저 개런티로 출연, “잘생긴데다 착하기까지 하다”는 말을 들었던 장동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한해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매니저 왈 “동건이 형은 올해도 짭짤하더라니깐요”.

희비가 교차했던 2002년. 성공과 실패의 반복으로 긴 터널을 함께 잘 통과했으니 2003년에는 좀더 화려하고 멋진 말, 말, 말 퍼레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승혜 씨네월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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