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버지는 아들 손에 죽고 싶었다

  • 입력 2002년 9월 11일 17시 24분


코멘트
《이번 추석을 겨냥해 개봉하는 영화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샘 멘데스 감독의 ‘로드 투 퍼디션’. 폴 뉴먼과 톰 행크스가 부자(父子)나 다름없는 마피아의 1, 2인자로 등장해 아버지와 아들의 애증 심리를 묘사한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자 미국에서 올해 7월에 개봉했을 때 내년 아카데미상 유력 후보라는 평을 받았던 작품. ‘로드 투 퍼디션’에 비친 부자 관계를 영화평론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심영섭씨가 심리학적으로 분석했다.》

한승원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에는 살부계라고 하는 은밀한 품앗이 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산주의자인 아들들이 친일 행위로 축재를 한 아비를 용서하지 못하고 품앗이로 타인의 아비를 죽여주고 누대의 죄를 씻으려는 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굳이 외디푸스 콤플렉스 운운하지 않아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비슷한 숙명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그늘에 평생 뼈를 묻을 줄 알았더니, 어느 날 뒤돌아보면 아버지라는 큰 산이 자그마한 동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착시현상.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로드 투 퍼디션’은 유사 이래로 반복되어온 가장 오래된 인간 관계, 아버지와 아들을 갱스터 장르안에서 다루는 색다른 영화다. 1931년 일리노이주의 한 도시. 킬러인 마이클 설리번(톰 행크스)이 속한 아일랜드 갱단은 마피아처럼 가족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12세짜리 아들은 아버지가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남동생과 눈싸움하기에 여념이 없다. 영화 초반부, 방문의 반쪽에 가려진 채 옷을 벗는 아버지는 소년에게 말 그대로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형상화된다.

공황기의 암울함속에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여자가 아닌 죽음이다. 얼음을 채운 시신이나 아버지가 행하는 살인속에서 소년 마이클은 죽음이라는 초경을 치러 내는 것 같다. 여기서 죽음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자 메타포로 작용한다. 죽음은 갱단을 묶는 끈이자, 마이클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비즈니스인 동시에, 애써 아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는 마이클의 원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부’의 첫 장면이 결혼식으로 시작하듯 ‘로드 투 퍼디션’의 첫 장면은 장례식으로 시작된다.

소년은 아버지를 ‘서(Sir)’라는 경칭으로 부를 만큼 어려워하고 존경한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목격한 살인현장에서 아버지가 킬러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소년의 세계는 급작스러운 혼돈속으로 빠져든다.

이제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이클은 정신적인 양아버지인 보스 루니와 그의 아들을 죽여야 할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루니는 루니대로 못난 아들이지만 자신의 아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영어로 ‘퍼디션(Perdition)’은 지옥이라는 뜻. 복수와 생존의 기로에 선 아버지와 아들은 지옥으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감독 샘 멘데스는 이 영화를 통해 ‘과연 선한 사람도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를 질문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소년의 입장에서 보면 성당을 다니면서도 누군가에게 기관총을 쏴 대는 아버지란 모순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로 대표되는 모순의 세상을 받아들일 때 소년은 훌쩍 어른이 되어 버린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자신처럼 수학을 못하는 아들을 보고는 “네가 나를 닮아 무서웠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고아 출신인 마이클로서는 아버지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조차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자식은 바로 자신의 거울이었던 셈. 공적인 영역에서는 사적으로, 사적인 영역에서는 공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아버지는 아들에게 투영되었던 자신의 그림자, 살인의 죄의식에서 끊임없이 도망가려 든다.

이렇듯 ‘로드 투 퍼디션’은 원형적인 이야기이다. 감독 샘 멘데스는 겨울, 암흑, 로 키 조명 같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이용하여 표면만 말짱하고 내부는 얼어 붙어 있는 인간관계를 죽음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대부’와 ‘에덴의 동쪽’을 혼합한 것 같은 ‘로드 투 퍼디션’의 총구에는 차가운 연기가 가득하다. 여자는 여자고 남자는 남자였던 시절의 향수, ‘대부’의 아우라를 걷어 낸 영화는 갱스터 집단에 존재하는 엄연한 생존의 논리를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드 투 퍼디션’은 갱스터 영화인 동시에 로드 무비. ‘아메리칸 뷰티’에서 딸의 친구에게 빠지는 중년 남성의 내면을 보여주었던 샘 멘데스는 기관총을 들고 다니는 카인과 아벨의 로드 무비에서 다시 한번 영혼의 회복을 꿈꾼다. 누군가를 죽이기만 했던 마이클은 아들을 살리는 일을 행함으로써 비로소 지옥 같은 영혼의 북쪽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아마 세상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 누군가의 발뒤꿈치를 좇아 살아가는 것을 거부한 인간에게 아버지는 거대한 멍에로 기호화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아버지에게 아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로드 투 퍼디션’은 아들의 입장이었을 때는 결코 알지 못했던 비밀을 깨닫게 해준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마이클이 루니에게 기관총을 들이 밀었을 때, 루니는 “자네 손에 죽게 되어 기쁘다”고 담담히 말한다.

루니는 마이클에게 “아들은 아버지를 궁지에 몰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말했었다. 이 말은 바꾸어 보면 결국 “아버지는 아들에게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남아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살부계를 조직했던 성급한 아들들도 언젠가는 깨달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품앗이의 살인이 아닌 아들의 손에 죽고 싶어한다는 것을. 물론 아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될 때, 그들은 이미 늙은 아비가 되어 에덴의 동쪽으로 멀리멀리 추방당해 있겠지만 말이다.

심 영 섭 영화평론가·임상심리학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