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제국의 아침' 김상중 "절경에 빠져 실제같은 연기"

  • 입력 2002년 1월 30일 18시 03분


탤런트 김상중이 KBS1 ‘제국의 아침’ 촬영을 위해 제작진과 함께 일주일간 북한 평양과 백두산을 다녀왔다. 3월2일 첫 방영되는 ‘제국의 아침’은 ‘태조 왕건’의 후속으로 고려초 제국의 기틀이 잡혀가는 과정을 담는다. 김상중은 여기서 고려 4대왕 정종역을 맡았다.

김상중은 29일 베이징을 경유해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자마자 서울 여의도 KBS 본관의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얼굴엔 피로가 엿보였으나 “백두산 정기를 흠뻑 맞고 왔다”는 그의 말대로 눈빛이 강렬했다.

촬영은 22일부터 1주일간 평양과 백두산 정상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백두산에서는 날씨가 나빠 총 촬영 시간은 20시간을 채 안됐다.

“20kg짜리 배낭을 지고 백두산 정상까지 8km를 걸었습니다. 몇발짝 앞을 보기 힘들만큼 눈보라가 거셌어요.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가 들려주는 백두산 촬영기는 ‘사투’였다. 그는 해병대 출신이지만 영하 35도의 추위와 강풍이 뼛속까지 스며드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고 한다.

“북측 안내원 2명과 함께 백두산까지 올라갔는데 위기가 닥칠 때마다 ‘동지’가 됐어요.”

다행히 촬영 당일 날씨가 ‘거짓말처럼’ 맑게 갰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설경 앞에 그동안의 고생도 말끔히 가셨다.

“세상에 그보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지. 백두산 정기 덕분에 무엇엔가 홀린 듯 촬영에 임했습니다.”

늘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김상중은 인터뷰 내내 “장관이었다” “감개무량했다”고 말할만큼 상기돼 있었다.

백두산 정상에서 찍은 장면은 왕건의 두 아들(김상중과 최재성)이 고구려의 옛 땅을 내려다보며 “해가 지지 않는 고려제국을 만들자”고 뜻을 모으는 대목. 남한의 야외세트장에서 촬영할 때와 얼마나 달랐을까.

“백두산 현지 촬영은 타임머신을 타고 1000년전 ‘그곳’으로 간 것처럼 연기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줬습니다. 저절로 탄성이 솟아 나왔어요. 연기가 아니라 실제였던 셈이죠.”

이날 안영동 담당 CP는 “1년 내내 백두산에서 촬영을 해도 좋다는 북측의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제국의 아침’을 통해 백두산의 4계를 배경으로 한 김상중의 연기를 계속 볼 수 있게 된 셈.

김상중은 “너무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가야 한다는 게 가슴 아프다”며 “‘제국의 아침’이 남북이 문화적으로 가까워지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김상중의 백두산 촬영기

평양에 도착한 다음날인 23일 새벽 제작진 10명은 백두산 인근 삼지연 공항에 도착했다.

백두산 정상에 오르려면 삼지연에서 백두다리까지 헬리콥터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정상까지 걸어야 한다. 그러나 이날 눈보라가 심해 삼지연에서 발이 묶였다.

근처 호텔에 여장을 풀고 간단한 촬영을 하며 눈발이 잦아지길 기다렸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호텔에서 체온 유지를 위해 서로 껴안았다. 24일도 마찬가지였다.

25일 잠에서 깼을 때 믿을 수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맑게 개어 있었다. 제작진은 황급히 짐을 챙겨 헬리콥터에 올랐다.

백두다리부터는 8km 산행이 시작됐다. 평소 체력은 자신있었지만 만만치 않았다. 정상에서는 숨돌릴 틈 없이 촬영했다. 그날 밤은 경비초소에서 신세를 졌다. 북측 안내원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며 “나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착잡했다.

돌아오는 날도 날씨 때문에 곤경에 빠졌다. 백두다리까지 내려왔으나 날씨가 나빠 헬리콥터가 뜨기 어려웠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비상식량은 정상에 있는 북한인들에게 모두 주고 왔기 때문이다. 눈보라가 계속된다면 얼어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일곱 시간을 기다리자 헬리콥터가 나타났다. 헬리콥터 조종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구조하러 온 것이다. 제작진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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