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TV드라마 '여우와 솜사탕'속의 50代 주부

  • 입력 2002년 1월 15일 19시 01분


‘여자 팔자는 자기 하기 나름, 남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남편이 챙겨주기만 기다리고 있다간 인생의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라고 생각하는 50대 주부 성구자(55·이경진 분). 가정의 중대사는 여자가 결정하며, 남자는 가정일에 있어 보조자일 뿐이라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반면 성구자의 고교동창이자 인생의 영원한 맞수인 어말숙(56·고두심 분)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언제나 남편 눈치만 슬금슬금 보며 산다. 가끔씩 대들고 싶은 충동도 생기지만 남편의 헛기침 한방에 숨을 곳을 찾기 바쁜 전형적인 한국의 50대 주부. 남편 등뒤에 대고 구시렁거릴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만도 그녀에겐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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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와 솜사탕'의 어말숙과 성구자

사극 열풍의 틈새 속에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는 MBC 주말연속극 ‘여우와 솜사탕’에는 이처럼 극명하게 다른 스타일의 50대 주부들이 등장한다. 조금은 극단적이지만 이들의 인생에서 우리네 50대 여성들은 삶에 지쳐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 자신의 삶은 어땠는지, 그리고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건지, TV에 비친 이들의 모습을 통해 그 가능성을 찾아본다.

◆[포인트 하나]"뒤웅박 팔자?천만에!" 집안 돈줄 장악◆

▽권력은 돈에서 나온다〓구두쇠 남편 탓에 말숙에겐 겨우 중학생 수준의 경제권이 있을 뿐이다.

두부 한 모 살 때도 남편의 기분까지 살펴가며 돈을 타내야 할 정도. 밖에서 친구라도 만나려면 커피 값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에게 거짓말까지 해 ‘삥땅’을 쳐야 하는 처량한 신세다. 당연히 집안의 모든 일엔 남편의 말이 우선이고 말숙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난다.

반면 구자는 남편이 맡긴 월급통장을 통해 집안의 돈줄을 완벽하게 휘어잡고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말숙에 비해선 씀씀이도 큰 편이다. 아끼고 절약하기보다는 치장하고 꾸미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스타일이다.

권력은 돈에서 나오는 법. 자연히 구자는 집안 대소사(大小事)에 있어 사실상의 결정권을 갖게 되고 두 딸도 아빠보단 엄마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포인트 둘]"남편 말이 우선" 첫째도 둘째도 순종◆

▽어떤 남편과 사느냐도 중요〓드라마 첫회에서 구자의 남편 안국민(55·이영하 분)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와 종이에 적힌 주소만 달랑 들고 집을 찾아 헤매는 장면이 나온다. 남편과 상의 한마디 없이 구자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집을 찾느라 하루종일 헤맨 것. 이 장면에서 볼 수 있듯 국민은 모든 일을 부인에게 맡기는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부인의 극성스러움까지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자상한 남편 상. 하지만 말숙의 남편 봉진섭(60·백일섭 분)은 90년대 초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50, 60대 남성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던 ‘대발이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성에 안 차면 당장 고함부터 지르고 보는 성미. 이런 남편이랑 살자니 자연히 말숙의 성격도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다.

◆[포인트 셋]자식들도 "내 뜻대로" vs "네 뜻대로◆

▽치맛바람도 강도가 다르다〓자식을 사랑하는 데 어찌 정도가 있으랴만 구자의 자식사랑은 좀 유난스럽다.

한의대에 다니는 딸 선녀(24·소유진 분)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구자는 사소한 일까지 모두 간섭한다. 띠 동갑인 말숙의 아들 강철(36·유준상 분)과 교제한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인사를 온 강철에게 면박을 주었을 정도.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이다. 반면 말숙은 자녀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친구같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에게 기가 눌린 탓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자식들의 뜻에 따르는 것이 좋다는 게 말숙의 지론. 구자가 자신의 아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는 결혼에 찬성하고 마는 게 바로 그녀의 자식사랑법이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네티즌 생각은…어말숙 지지 59.7%,성구자 지지 40.3%◆

네티즌들은 어말숙의 손을 들어줬다. 아직까진 전통적인 50대 주부상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더 얻고 있다는 뜻이다.

동아일보가 최근 동아닷컴(www.donga.com) 네티즌 31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어말숙이 어리숙하긴 하지만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전체의 36.1%인 1135명이 지지표를 던졌다. ‘어말숙처럼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의견도 23.6%(743명)여서 어말숙에 대한 지지자는 모두 59.7%에 달했다.

반면 성구자는 드라마에서와 달리 어말숙의 기세에 눌렸다. ‘성구자가 극성스럽긴 하지만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전체의 18.7%(590명)가 찬성을 표시했다. ‘성구자처럼 모든 일을 주부가 챙겨야 한다’는 네티즌은 21.6%(680명). 전체의 40.3%가 성구자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 ‘극성 주부’를 동경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줬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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