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자의 눈]이승헌/외압인가 눈치보기인가

  • 입력 2001년 6월 24일 19시 31분


22일 오전 8시반경 서울 여의도 KBS 라디오 스튜디오. 동아일보 경제부 박원재기자는 출연중인 KBS 2라디오 ‘이영권의 경제포커스’ 방송을 마친 후 담당 PD인 변석찬 차장과 마주쳤다.

“‘빅3’(동아 조선 중앙) 기자는 출연자에서 제외하기로 방송국 차원에서 결정했습니다. 몇 차례 상부 지시에도 불구하고 밀고 가려 했는데 부장 국장에 이어 라디오센터장까지 나서는 통에 어쩔 수 없군요.”(변 차장)

변 차장은 이날도 ‘왜 말을 듣지 않느냐’는 센터장의 호통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22일 오후 KBS 김선옥 라디오센터장에게 이를 확인하려고 전화했다. 김 센터장은 몇 차례의 통화 끝에 “‘빅3’ 신문사는 지금같이 예민한 상황에서 좀 그렇지 않느냐는 현장의 의견이 있어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후 23일자 본보에는 이 같은 취재를 근거로 KBS가 박 기자를 출연 중단시킨 사실 등을 다룬 기사가 나갔고, KBS는 이날 ‘9뉴스’를 통해 이를 반박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KBS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박 기자가 출연중인 코너는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를 다뤄야하나, 박 기자가 이해 당사자로 간주될 수 있는 신문사의 소속 기자이기 때문에 공정성과 객관성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면서 이번 결정이 담당 PD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른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박 기자가 전날 PD로부터 들은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기자의 관심을 끄는 또 한가지는 담당 변 PD가 윗선의 지시에 따라 출연을 배제했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 담당 간부인 김 센터장은 현장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상반된 얘기를 하고 있는 점이다. 아울러 언론사 세무조사 발표(20일)가 나오자마자 출연 중단을 통보한 것도 의심의 눈길을 거두기 어렵다.

설령 KBS측의 주장대로 ‘외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 같은 ‘사실’들은 독립성을 견지해야 할 공영방송 KBS 간부들의 ‘눈치보기’ 풍토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승헌<문화부>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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