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도올의 논어 이야기'에 출연한 김수환 추기경

  • 입력 2001년 4월 24일 21시 01분


"하늘의 뜻에 순응하면서 인을 실천하는 공자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공경을 강조한 기독교의 기본 정신과 같습니다."

KBS1 <도올의 논어 이야기>에 강사로 초빙된 김수환 추기경은 24일 오후 4시부터 여의도 KBS 본관 스튜디오에서 '공자와 그리스도의 인간관'에 관한 특별강연을 했다.

장장 100여분에 걸쳐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김 추기경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 김용옥씨의 저서 <도올의 논어 Ⅰ>에서 인용한 "공자는 한번도 논어를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인간을 말했고 삶을 이야기했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한 김 추기경은 공자가 얼마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강조했는지 역설했다.

김 추기경은 "공자가 논어에서 가장 강조한 인(仁)은 사람에 대한 사랑, 애인(愛人)이었다"며 인을 지키기 위해 몸을 버릴 수 있는 살신성인의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공자는 이러한 인을 실천하면서 "천명(天命)을 순응하고 두려워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천(天)'이란 기독교의 하느님과 같다고 설명했다.

김 추기경은 또 기독교적 시각에서 본 인간의 의미와 존재를 거론하면서 인간이기 때문에 누려야 할 존엄과 가치는 불가침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하느님이 주신 것이고, 하느님을 배제하면 인간의 존엄을 말할 수 없다면서 최근 과학계 일부의 무신론적 경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김 추기경의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김용옥씨는 중간 중간 질문과 보충설명으로 이날 강의의 주제인 '인간존중'을 강조했다. 김 추기경이 공자가 말한 천명과 하느님이 같은 의미임을 강조하자 다산 정약용이 <논어> '중용(中庸)'편의 신독(愼獨)을 통해 신의 존재를 인정한 바 있다면서 유교에도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김용옥씨는 가끔 기독교의 세속화와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 등과 관련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눈길을 끌었다.

79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100분이 넘는 강의를 휴식없이 계속한 김 추기경은 강연 내내 <논어>와 <맹자>에서 여러 부분을 적절하게 인용해 청중들을 놀라게 했다. 또 중간 중간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것 같아서…" "너무 길면 편집에서 자르세요" 등 재치 있는 유머로 강연을 부드럽게 끌고 갔다.

김용옥씨가 "요즘 주변의 질시 때문에 괴롭다"며 자신의 심경을 토로할 때는 "지천명(知天命)은 했으나 아직 이순(耳順)이 안돼 그렇다. 공자가 <논어>에서 이순이 되면 마음이 순해져서 외부의 어떤 소리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냐"고 답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강의 말미에 살신성인의 사상을 실천한 고 이수현씨와 홍제동 순직한 소방관 이야기를 할 때는 장내에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김 추기경이 강의를 끝내며 "공자와 그리스도가 강조한 인과 사랑의 정신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자"고 호소하자 스튜디오에 모인 200여명의 청중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