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마지막 세자빈 줄리아 리 '쓸쓸한귀국'

  • 입력 2000년 11월 16일 19시 01분


“신이 만든 운명일까요. 평범한 미국 여인을 동양의 신사와 사랑에 빠지도록 한 것은. 그 사랑이 저를 조선왕가의 마지막 여인으로 만들었지요. 이제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당신에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편지를 씁니다….”

17일 방영되는 ‘MBC 스페셜―줄리아의 마지막 편지’(밤 11시5분)에서는 조선왕가의 ‘마지막 세자빈’ 줄리아 리를 다뤘다.

줄리아의 편지에서 지칭한 ‘동양의 신사’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의 외아들 이구씨. 미국 뉴욕의 한 건축회사에서 근무하던 줄리아는 MIT 공대 출신의 건축가 이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58년 당시 서른 네 살의 줄리아는 여덟살 연하의 이구와 결혼, 조선왕실의 마지막 세자빈이 됐다. 그러나 63년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벽안의 세자빈’을 종친들은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종친들은 후사를 잇지 못했다는 이유로 줄리아와 이구에게 끊임없이 이혼을 종용했고 두 사람은 74년 별거에 들어간 끝에 82년 결국 헤어졌다. 남편의 바람기도 한 몫을 했다.

이후 줄리아는 남편의 나라, 한국에 혼자 계속 머물며 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과 함께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줄리아 숍’이라는 의상실을 운영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95년 미국 하와이로 돌아갔다. 그 후 그는 우리에게 ‘잊혀진 여인’이 됐다.

그러던 그가 9월 3일 일시 귀국했다. 77세의 고령에 중풍으로 한쪽 손까지 쓸 수 없게 된 그로서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한국 방문이었다.

한 달간 한국에 머물면서 그는 과거를 정리라도 하듯 추억의 장소를 찾았다. 그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시아버지 영친왕의 묘소, 영원(英園). 그는 또 한 때 자신이 안주인으로 머물렀던 비원의 낙선재를 돌아보고 장애인 복지 사업을 함께 했던 장애인 제자들을 만났다.

이번 방문에서 그가 무엇보다 소원했던 것은 ‘평생의 사랑’이었던 전 남편 이구와의 만남. 그러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그는 전 남편을 만나 직접 전해주고 싶었던 조선왕가의 유물과 한국의 근대사 주요 사진 450여점을 덕수궁 박물관에 기증하고 지난달 16일 쓸쓸히 하와이로 돌아갔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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