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Now]DDR은 구식…이젠 '이지투댄서'

  • 입력 2000년 11월 7일 19시 38분


부산 제일의 번화가인 남포동. 부산은 지리적 조건 탓에 일본에서 유행하는 오락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곳이다. 남포동 대형극장의 포스터 사이를 하루종일 경쾌한 댄스음악이 메운다. 발원지는 인근 대형 오락장. 입구에 도열한 댄스 게임기들이 하루종일 강한 비트의 춤곡을 토해낸다.

“디디알(Dance Dance Revolution)이겠군”하고 지레 짐작했다면 구세대. ‘디디알’이나 ‘펌프’ 같은 댄스게임은 이미 ‘구닥다리’이기 때문. 요즘 10대부터 20대에 포위된 것은 ‘디디알’에서 한참 진화한 신종 ‘이지 투 댄서(EZ 2 Dancer)’다.

신종 게임이 요구하는 테크닉은 근육이 굳은 이라면 엄두도 못낸다. ‘디디알’이나 ‘펌프’이 2차원 게임이라면 ‘이지 투 댄서’는 3차원 게임이다. 스크린에 올라오는 화살표에 맞춰 전,후,좌,우,대각 방향으로 발을 짚는 것은 기본이고 동시에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양 손을 좌우로 휘저어야 하고, 양 발도 앞으로 뻗어야 한다. 발판 바닥에서 올라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레이저빔이 이 동작들을 체크한다.

실제로 ‘DDR 초절정 무림고수’조차 처음에는 어물거리다 노래 한곡을 끝내지 못하고 퇴장당하기 일쑤다. 왼발로 왼쪽 발판을 짚으면서 동시에 오른손을 뻗고, 이어서 오른발 앞으로 뻗자마자 뒷 발판을 집고 왼손 뻗고…. 초당 두 세 개 동작을 한꺼번에 소화하기란 유연함과 리듬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20여분간 도전자의 동작을 보며 연구하던 직장인 이현정씨(26)도 700원을 넣고 댄스 발판에 올라섰다. “나도 ‘디디알’은 제법 했다”고 자신만만했지만 결과는 참패. 보기 민망할 정도로 허둥거리더니 박지윤의 ‘소중한 사랑’ 노래 중간에 게임이 끝났다. “발 동작은 웬만큼 맞추겠는데 손 동작까지 동시에 하는게 간단치 않다”는 평. 옆에 있던 남자 친구는 “손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머리를 갖다대라”며 핀잔을 준다.

신종 댄스게임은 난이도가 몇배로 높아진 반면 손을 사용함으로써 댄스음악의 비트에 실린 몸의 자유를 극대화시켰다. 못하면 허우적거리지만 잘하면 진짜 춤을 출수 있는 것이다. 기계 전후의 ‘4웨이 스테레오 스피커’가 뿜어내는 ‘빵빵한’ 사운드가 현장감을 더한다.

한 시간 넘게 지켜봤지만 3 라운드를 돌파한 사람은 ‘춤 다이어트’로 1년 가까이 ‘펌프’를 즐겼다는 부산금정고 1학년 김소미양 뿐. 두 달간 연마했다는 그는 “돌다리 짚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춤을 맘껏 출 수 있는 게 매력”이라고 평했다. “3차원 댄스까지 정복한 친구는 몇 명 안된다”는 자랑도 덧붙였다.

행인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이 게임이 오락장의 로열석이라는 매장 초입을 장악한 것은 두 달전. 서너달 전부터 ‘댄스 스테이션 3D DX’ ‘이지 투 댄서(EZ 2 Dancer)’ 같은 ‘포스트―디디알’ 게임이 출현해 손님을 끌 때였다.

그러나 일본의 게임문화를 신속하게 받아들이는 부산의 분위기로 볼 때 ‘포스트 디디알’게임기들도 머지않아 신종게임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지 모른다.

<부산〓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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