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뷰]이상야릇한 동화의 유혹, KBS <가을동화>

  • 입력 2000년 10월 11일 17시 35분


<가을동화>엔 뭔가 야릇한 게 있다.

어른들 한테 들켰다간 난리날 '로맨스 소설'을 남몰래 읽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안돼, 이러면 안돼..."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그런 유혹이 있다.

"지금 내 옆에서 TV를 보는 저 멋진 옆모습의 오빠가 사실 나랑은 피 한방울 안 섞인 남이라면?" "소녀티가 나기 시작한 깜찍한 여동생이 알고보니 이웃집 딸이라면?"

우,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얼굴이 화끈화끈거린다. "미쳤어, 미쳤어. 이런 상상을 하다니..." 할 일이다. 그런데 오빠를 남자로, 여동생을 여자로 사랑하게 된 남녀의 이야기가 '동화'의 탈을 쓰고 다가왔다. 그것도 이 가을에 말이다.

<가을동화>는 어떻게 보면 꽤 유치찬란하다. 10년 만에 만난 여동생(인 줄 알았던 여자) 은서(송혜교)는 비련의 여주인공 답게 뻑하면 눈물부터 흘린다. 멋진 청년이 된 오빠(인 줄 알았던 남자) 준서(송승헌)는 운명적으로 은서를 사랑한다. 약혼녀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준서의 껄렁껄렁한 친구 태석(원빈)도 뜬금없이 시골 처녀 은서에게 진실한 사랑을 느끼고 적극 구애한다(누가 은서를 불행하다 하랴? 내 보기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신애가 훨씬 불쌍하구만). 대단한 삼각관계에 빠진 은서는 결국 백혈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스토리 아닌가?

거기다 윤교수댁 자녀들 연기하는 거 보면... 미친다. 어쩜 준서고 신애고 하나 같이 그 모양인지 피(?)는 절대 못 속이나보다. 준서가 눈이 가느다래지면서 은서를 바라볼 땐 얼굴에 "나 지금 연기해..." 라고 써있다.

워낙 성질부리는 대사 밖에 없긴 하지만 신애가 이마에 핏줄 세우고 말을 할 땐 보는 내가 다 안쓰럽다. 분위기 팍팍 살리는 태석이의 연기가 너무 아까워 남매의 어설픈 연기를 눈 질끈 감고 용서하며 본다는 얘기다.

뭐, TV 드라마 속 사랑이란 게 원체 뻔한 거고, 요즘 연기자들 연기 그렇고 그런 것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게 뻔한 줄 알면서도 보는 게 드라마 아닌가?

<가을동화>는 그래도 확실히 나를 유혹한다. 원래 금단의 사과가 더 빨갛고 맛있어 보이는 법 아닌가? 은서와 준서가 눈물 가득 고인 얼굴로 "우리 이래선 안돼, 오빠 동생으로 돌아가자..."하면서도 절대 헤어지지 못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쟤들 저러다 일 나겠네" "태석이 눈에 눈물만 나게 해봐라" 하는 마음이 든다. 둘의 '금지된 사랑'을 보면서 아슬아슬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꼭집어서 안되는 남녀 사이는 아니지만 우리에겐 그래도 '국민정서'라는 게 있지않은가! 은서와 준서가 오빠 동생에서 여보 당신으로 갈 '금단의 선'을 넘을 것이냐, 말 것이냐 정말 애간장 다 녹는다.

동화책 속 그림보다 더 이쁜 풍경 속에, 선남선녀들이 (최고로 이쁘고 멋있게)울고 웃고 사랑하고 상처받는 순정만화 같은 러브 스토리. 거기에 은근히 더해진 '금지'된 상상이야말로 우리를 <가을동화>에 매혹시키는 이유는 아닐까?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wim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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