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뷰]MBC드라마 '아줌마'여, 아줌마를 우습게 보지말라!

  • 입력 2000년 10월 4일 11시 57분


전국 아줌마들의 열렬한 기대 속에 시작한 MBC 월화드라마 '아줌마'.

'가부장적 집안의 순종적인 전업주부 오삼숙(원미경)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변신하는 과정을 그린 코믹 홈 드라마'라기에 이 전업주부, 첫회부터 빠지지 않고 그녀의 분투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 절대로 평범한 전업주부가 아니다. 남편(강석우)이 굳이 고졸 출신이라는 걸 강조하지 않아도(고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이 아줌마, 도대체 아무 생각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순진한 주부 내지는 귀여운 푼수라고 생각하기에도 모자람이 많다. 뭐 생각나는 대로 "백치미의 삼숙 여사"라고 해두자. 한 회에도 몇 번씩 "저 아줌마, 바보아냐?"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니까.

삼숙 여사, 속은 편할 것 같다. 남편의 뻔한 거짓말도 진실로 믿고 시댁 식구들의 얌통머리 없는 언행을 '대승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말이다. "가정의 구심점은 주부"라고 위안하며 식모살이 같은 시집살이도 마다 않는 삼숙 여사의 하루하루는 남편과의 잔머리 대결에 이골이 난 나 같은 인간에겐 거의 '득도'의 경지로 보인다. 하지만 삼숙 여사 속은 편할지 몰라도 보는 아줌마, 열받는다.

우리가 '아줌마'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단순무식하고 뻔뻔하고 시끄럽고 남편이 교수면 자기는 총장 행세하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TV 속의 아줌마들은 대체로 주책·푼수과 거나 공주·속물과다. 아니면 '전원일기'의 고두심 아줌마처럼 100% 현모양처거나. 아줌마들이 암만 "우리 주변엔 똑똑하고 경우 바르고 조용한 아줌마들이 더 많아요!"라고 우겨도 "거 참, 아줌마들 되게 시끄럽네..."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니 다행히 아줌마가 아닌 사람들은 삼숙 여사를 보며 "아줌마가 다 저렇지, 뭐..."하며 킥킥거리고 아줌마들만 얼굴이 벌개져서 "아니, 아직도 저렇게 사는 여편네가 있어?"하며 열받는다. "나중엔 변신한다니까"라며 드라마는 철저히 아줌마의 이미지를 희화화하고 놀려먹는다.

물론 '아줌마'엔 또 아줌마들만 느낄 수 있는 자잘한 재미도 있다. 시누이는 미운데 조카는 이뻐하는 아줌마의 마음이나, 남편의 출세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는 모습이라든가. 이런 마음을 섹시한 처녀들이, 평생 아줌마 소리는 못 들어볼 남자들이 어떻게 알까? 요런 아줌마 심리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원미경님을 삼숙 여사에 묶어두기가 아깝다는 생각까지 든다.

어쨌든 드라마 '아줌마'에 "21세기를 살아가는 보통 아줌마"를 기대했던 내 바람은 한방에 날아가고 TV 속 아줌마들의 인생은 오늘도 어제 같고 어제도 그제 같다는 씁쓸한 진리만 깨닫게 되었다.

삼숙 여사가 빨리 정신차려서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남편과 시집 식구들에게 복수한들 무엇하리?(복수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삼숙 여사의 청춘은 설거지 통 속에서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 버린 것을.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wim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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