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현장르포 제3지대', 기구한 프로레슬러의 삶

  • 입력 2000년 4월 4일 19시 40분


지난달 25일 열린 ‘박치기 왕’ 김일의 은퇴식은 영화 ‘반칙왕’의 흥행 성공이 아니면 힘들지 않았을까. KBS1 다큐멘터리 ‘현장르포 제3지대’(‘리스프로’ 제작, 금 밤11·45)는 7일 오랫만에 세간의 관심을 모은 프로레슬링을 부활시키기 위해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는 프로레슬러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김일의 은퇴식에서 그의 공식 후계자로 지목된 WWA(세계 프로레슬링 연맹) 챔피언 이왕표씨(46). 그가 이끄는 ‘프로레슬링 군단’에는 영화 ‘반칙왕’보다 더 기막히고 다양한 사연의 소유자들이 많다. 한빛은행 서울 일원동 지점장 백종호씨(51). 사회적으로 성공한 은행지점장인 그는 아직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으면서도 이왕표 사범의 고된 ‘백드롭’을 1주일에 서너 차례 견디고 있다. 이왕표씨와 레슬링을 함께 시작한 최고령 현직 선수 김도유씨(54). 그의 부인과 가족들은 남편이 은퇴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이왕표씨가 이끄는 프로레슬러는 70년대 운동을 시작한 사람부터 경력 3년 미만의 20대 젊은이까지 대략 20여명. 이들은 서울 영등포의 한 주차빌딩 옥상에 낡은 훈련 기구들을 설치해놓고 연습하고 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 곳은 레슬링 전용 링이 설치된 국내 유일의 경기장이자 연습장이다.

당연히 대부분 이들의 생활은 프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어려워 부업은 필수다. 어떤 이는 백화점 보안 업무를 하고 있고, 다른 이는 구멍 가게를 운영하면서 운동하고 있다. 이왕표씨는 시합 때 자신과 선수들이 입을 유니폼은 물론, 가면 망토 신발 등 모든 장비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제작진은 또 경기 직전 이들의 모습을 외주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3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경기 직전 대기소인 락커룸에서 선수들의 긴장된 표정, 가장이자 아버지인 노지심씨(영화 ‘반칙왕’ 출연)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부인과 딸의 안타까운 모습, 경기 직후 아픔을 참지 못해 진통제를 먹는 선수들의 고통까지 담았다.

연출자인 ‘리스프로’의 심승현PD는 “링 바로 아래까지 접근해 촬영한 몇몇 장면은 프로레슬링을 단지 쇼로 규정할 수만은 없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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