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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1월 30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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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가수들은 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넓은 의미의 배우로 불린다. 이를테면 ‘휘파람’을 부른 전혜영은 인민배우였고 ‘반갑습니다’의 리경숙은 공훈배우였다. 경력이나 기량은 인민배우가 더 높은 급으로 분류된다고 안내원은 알려주었다.
공훈배우 김광숙의 CD에서 낯익은 노래제목 하나를 발견했다. 국내가수 심수봉이 부른 ‘백만송이 장미’였다. 궁금하여 들어보았더니 러시아어로 부른 점이 다를 뿐 동일한 멜로디였다. 반가웠다. 이번 ‘남북 대중음악제’에서 심수봉과 김광숙이 번갈아 노래하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북한의 가수들은 일정한 악단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이 대체적인 모습이었다. 전혜영과 리경숙은 보천보 전자악단 소속이었고, ‘다시 만납시다’를 부른 미모의 공훈배우 림청은 왕재산경음악단 소속이었다.
‘화면반주음악장’에서 접대원들이 부른 ‘녀성은 꽃이라네’는 인민예술가 호칭의 리종오가 작곡하고 리분희가 부른 노래였다. 제목만 들어서는 북쪽 여성들의 강인한 이미지와 맞지 않았는데 가사를 꼼꼼히 살펴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 꽃은 ‘한 가정 알뜰살뜰 돌보는 꽃’(1절)을 넘어서 ‘아들딸 영웅으로 키우는 꽃’(2절)이며 나아가 ‘위훈의 길에 수놓을 꽃’(3절)이었던 것이다.
평양에서의 셋째날(25일). 우리는 말로만 듣던 평양교예단의 세계적 공중묘기를 직접 볼 기회를 얻었다. 장소는 평양교예극장이었다. 암전 상태에서 한복을 곱게 입은 여성사회자가 핀조명을 받으며 나타나 각 종목의 출연자를 경쾌하게 소개했는데 그 때마다 오케스트라의 생음악 반주가 뒤따랐다. 교예단원은 모두 31명, 그리고 강아지 6마리가 보조 출연자(?)였다.
수중, 빙상 교예도 대단한 수준이라고 들었는데 그날 우리가 본 것은 지상과 공중교예가 전부였다. 막간마다 나와서 접시 돌리기를 포함한 코믹 제스처를 보여준 두 남자단원을 주목했다. 그 중 한 사람은 개그맨 김국진을 연상케 했다. 특히 표정연기가 일품이었는데 김국진이 ‘오 마이 갓’ 할 때와 너무도 비슷해서 우리 일행을 경탄케 했다.
이동 중에 수없이 많은 구호들을 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였다. 비록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더라도 그나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는 대중문화 교류부터 한 걸음씩 조심스레 내딛는다면 통일의 길이 그렇게 험난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넷째날(26일). 조선예술영화촬영소를 찾았다. 백만평 부지에 시대별로 특색있는 세트가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내가 다닌 고려대의 전신인 1930년대 보성전문학교 건물도 세트로 세워져 있어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념관에는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분류된 ‘피바다’ ‘꽃파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 등에서 뽑은 스펙터클한 장면들이 전시돼 있었다.
우리 고전 ‘춘향전’이 설화에서 판소리, 신소설을 거쳐 영화로 옮겨진 것처럼 북쪽도 설화 또는 전설에서 소설로,다시 그것이 가극을 거쳐 영화로 옮겨지는 과정을 겪는 듯했다.
촬영을 막 끝낸 영화 ‘승냥이’의 대사 더빙 모습도 운좋게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자 한번 입 맞춰 보자우”하는 감독의 사인이 인상적이었다. 주연배우인 최순복은 수줍음이 많아 보였는데 막상 녹음에 들어가자 언제 그랬느냐 싶게 감정을 잘 표현하여 내재한 끼를 짐작케 했다.
음악회가 열릴 봉화예술극장은 각각 2000석과 800석 규모의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기관 어디서나 여성안내원은 모두 한복을 입고 있었다. “내 나이가 몇으로 보이느냐”는 느닷없는 질문에 “스물 아홉”이라고 대답하여 나를 어지럽게 했다. 물론 우리 일행은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차창 밖으로 비치는 건물들보다 사람들을 주시했다. 어디로 가는 사람들일까. 그들 역시 우리 일행을 눈여겨 보았을 것이다. 아마 그들의 호기심은 우리와 정반대일지 모른다.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통일은 몇천 마리의 소와 자동차 행렬이 오고가는 데서도 출발하겠지만, 아울러 서로가 따뜻한 시선을 주고받는 데서도 시작될 수 있다. 나는 그 점에서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서로를 하나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노래는 벽을 뛰어 넘기 때문이다. ‘화면반주음악장’에서 그들이 불러준 마지막 노래는 림청의 ‘다시 만납시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