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원 감독 '송어'로 4년만에 '귀향'…내달 6일 개봉

  • 입력 1999년 10월 28일 18시 28분


박종원 감독(41)은 89년 ‘구로 아리랑’으로 데뷔한 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영원한 제국’ 등 단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지만 국제무대에선 꽤 알려진 ‘스타 감독’이다. 불행하게도, 그의 영화는 국제영화제에서 여러 번 수상하는 등 환대를 받았지만 국내 흥행에서 크게 성공해본 적은 없다.

3,4년에 한 편씩 영화를 만드는 과작(寡作)의 감독인 그가 ‘영원한 제국’ 이후 4년만에 ‘송어’(11월6일 개봉)를 들고 돌아왔다. 이전 작품들에서 그의 탐구의 대상이 주로 ‘사회와 개인’의 관계였다면 이번에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바뀌었다. 그러나 권력의 쟁투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일그러진 본성에 대한 집요한 관심은 여전하다.

“난 여러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건 어색하다고 생각해요. 세 명 이상이 모이면 힘의 우열에 따른 부등호(不等號)가 반드시 생긴다고 봅니다.”

‘송어’의 등장인물들은 낯설고 고립된 공간에서 예의와 규범의 탈을 벗어 던지고 ‘정글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박감독은 영화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제한해 놓고, 갇힌 공간 안에서 인간 군상의 내밀한 욕망이 어떻게 드러나고 서로 충돌하는지를 실험하듯 보여준다.

“강원도 삼척 산속에서 영하 20도의 날씨에도 늦가을 장면을 촬영하느라 연기자들과 함께 고생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인 그는 최근 4년 동안 ‘부부는 일심동체’같은 명제에 ‘과연 그럴까’하고 의문을 던지는 류의 영화를 몇 번 구상해오다 ‘송어’까지 오게 됐다고 밝힌다.

다음 영화로 월드컵 축구가 열리는 날 밤,우발적으로 8명을 죽이게 된 삼수생의 이야기인 ‘낙원빌라’를 준비 중이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송어’어떤 영화?▼

외딴 시골에서 양어장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창현(황인성 분)에게 서울에서 고교 동창들과 그 가족이 찾아온다. 이들은 첫날부터 TV를 그리워하는가 하면 핸드폰과 자가용을 쓸 수 없게 되자 정서적인 공황상태에 빠져든다. 결국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이들의 우정과 체면은 모두 망가지고 평소 감춰져 있던 추악한 몰골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약해 밋밋한 편. 그러나 한밤중의 총소리에 충격받은 송어들이 ‘자살’해 버린 이후 영화는 기묘한 혼동 속으로 빠져든다.

인상적인 장면은 지옥같은 양어장에서 탈출한 고교 동창과 가족들이 서울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 등장인물들은 적나라하게 드러난 욕망을 썰렁한 농담과 어색한 웃음으로 수습하려 든다. 그러나 이들이 되돌아갈 평온한 일상조차 사실은 얄팍한 보호막에 불과하다고 비웃는 싸늘함이 화면 가득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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