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중딩」을 아느냐』 중학생들의 「영화독립선언」

  • 입력 1998년 9월 11일 19시 26분


‘중딩’(중학생)을 우습게 보지마라.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

중학생들의 당돌한 자기선언이 영화판에서 화제다.

지난달 독립영화협의회주최로 열린 ‘고딩(고등학생)영화제’에서 가장 열렬한 지지를 받은 작품은 30분짜리 단편인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

독립예술제에도 출품돼 13일 오후6시 서울의대 제1강의실에서 상영될 이 도발적 영화를 만든 스탭은 영파여중 2학년 방송반 아이들이다.

‘감독’ 이선희(15)가 말하는 연출의 변(辯).

“어른들이 만든 ‘나쁜 영화’를 보면서 화가 났어요. 어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세계를 우리만큼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태도는 불량하지만 고민많고 착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직접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너희가…’에는 실제로 ‘노는’ 아이들인 ‘일진’멤버들이 시나리오의 엉성한 부분을 고쳐주고 “우리가 안하면 누가 하겠느냐”며 출연을 자청했다.

이 ‘당찬 중딩’들의 영화제작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3월 부산단편영화제에서 교사와 학생간의 단절을 다룬 영화 ‘닥쳐’로 작품상을 받았고 올 3월에는 노인문제를 청소년의 시각에서 바라본 ‘지는 해는 마지막 빛을 불살라서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를 제작했다.

이들에 비한다면 시나리오 ‘고리’로 독립영화협의회 사전제작지원 공모에 당선된 최지윤(16·동구여중3)은 ‘완전초보’다. 극장에 가본지 2년이 넘었고 시나리오는 처음 써봤다. 그러나 창의력 구성력 제작가능성 등으로 진행된 심사에서 그는 고등학생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최고점을 받았다. ‘재치있는 대사, 유려한 장면전환이 중학생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는 평.

“PC통신 대화방에서 고등학생은 대학생을, 대학생은 직장인을 서로 부러워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어요. 인터넷에서 시나리오 작법을 보고 그냥 써본건데…. ”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PC통신과 면벽(面壁)을 즐기는 이 조숙한 소녀는 아직 영화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마음을 못정했다. 하지만 겨울 방학때 ‘고리’를 영화화하는 일에 도전해볼 작정이다. 혹시 아는가. 또 한 명의 독창적인 ‘중딩 감독’이 탄생할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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