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퍼드,영화「호스 위스퍼러」서 따뜻한 남자로 열연

  • 입력 1998년 6월 9일 06시 59분


영원한 미소년 로버트 레드퍼드가 돌아왔다.

금발에 푸른 눈, 4월의 햇살처럼 부드러운 미소, 여자의 모든 것을 받아줄 것만 같은 깊은 가슴…. 6일 개봉한 ‘호스 위스퍼러’에서 그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업 클로스 앤 퍼스널’에서 보여준 ‘따뜻한 남자’의 계보를 잇는다. 37년생, 환갑을 넘긴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로도 가슴저린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능력이 놀랍다.

‘호스 위스퍼러’에서 레드퍼드가 맡은 역은 말(馬)과 대화하고 내면의 상처까지 어루만지는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 톰 부커다. 사고로 몸과 마음을 심하게 다친 말과 소녀를 치유하면서 소녀의 엄마인 오만한 전문직 여성 애니(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잠시도 평온히 있지 못하고 발을 달달 들까부는 그 뉴욕 깍쟁이의 황폐한 영혼까지 사로잡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이 애니의 남편 앞에서 추는 블루스는 어떤 섹스보다도 에로틱하고 격정적이며… 그리고 눈물이 날 만큼 애절하다.

레드퍼드는 이같은 톰 부커와 자기자신을 자기도취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동일시했다. 미국 서부의 산타 모니카 출신으로 환경보호론자이기도 한 그는 상처입은 말과 사람뿐 아니라 현대문명에까지 대자연처럼 싱싱한 숨결을 불어넣는, 스스로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상대가 원하는 대로의 사랑을 주는 ‘총없는 영웅’역을 기쁘게 수행하면서, 지성과 상냥함, 정의로움을 겸비한 WASP(백인·앵글로색슨·프로테스탄트)의 이미지를 잇는다.

그리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바람같은 자유로움을 위해 결혼을 원치 않았던 것처럼,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짧은 불륜보다 영원한 사랑으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처럼 ‘호스 위스퍼러’에서도 레드퍼드는 여자와 헤어지는 쪽을 택했다. 니콜라스 에반스의 원작이 불륜에서 죽음으로 치닫는 것과 딴판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도덕적 이미지를 지키려는 감독 레드퍼드의 의지가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영원한 미소년의 모습이 남자들에게는 아니꼬운 모양이다. 뉴스위크의 제프 질스가 “레드퍼드는 자신의 외모를 멋있게 부각시키는데 너무 많은 공을 들였다”고 지적했을 만큼.

남자들이 싫어하건 말건 레드퍼드는 소녀적 취향을 지닌 여성 관객을 매료시킨다. 경제난 속에 남편 기까지 살리기 위해 애쓰는 IMF치하의 한국주부들을 위무하기에 충분하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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