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드레스」,옷통해 엿본 현대인의 삶

  • 입력 1998년 3월 11일 07시 31분


7일 개봉된 네덜란드 영화 ‘드레스’는 성(性)과 죽음, 젊음과 늙음, 정상과 일탈의 삶을 옷 한벌의 이동 경로를 따라 희화적으로 담은 특이한 영화다.

하늘색 바탕에 빨간 나뭇잎 무늬가 박혀있는 원피스 한벌은 농장에 탐스러운 목화송이로 놓여있을 때부터 디자이너, 소매상, 첫 구매자를 거쳐 옷과 함께 화장되는 노파에 이르기까지 한 세상을 유희하듯 돌아다니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 과정은 마치 긴 실올 하나로 각양각색의 무늬가 든 옷 한벌을 직조(織造)하는 것과 같아 영화는 결국 세상이 마치 울긋불긋한 원피스 한벌과 같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드레스’의 타이틀롤이자 명목상 주연인 원피스가 씨줄처럼 지나가는 길목에 ‘드레스’의 감독이자 시나리오작가, 실질적 주연인 알렉스 반 바르머담(디 스메트 역)이 날줄처럼 엮어진다. 열차 검표원 스메트는 그 원피스를 입은 여자만 보면 이유없이 발정(發情)하고 카페여급, 사춘기 소녀 등이 그의 황당무계한 구애 대상이 된다.

스메트는 두 여자와 ‘황홀한 조화’를 이루기 직전 매번 버림받고 마는데 결국 그 원피스가 그려진 미술관 그림을 도려내다가 잡혀가면서 이렇게 외친다. “나는 정상이다. 나는 정상이야!”

특정 물건만 보면 성도착증세를 보이는 전형적 ‘페티시즘’환자인 그는 스스로가 정상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너 자신을 돌아보라”고 비웃고 있는 것이다. 96년 베니스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

〈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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