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버호벤 영화세계]할리우드 생존전략에 충실한 흥행사

  • 입력 1997년 10월 24일 07시 49분


강렬한 섹스, 노골적인 폭력과 스릴, 예측불허의 상상력. 영화시장의 가장 탁월한 「세일즈맨」인 할리우드가 세계를 상대로 한 상업전략이다. 이 무대의 한복판에 폴 버호벤감독(58)이 있다. 「토탈리콜」 「로보캅」 「원초적 본능」 「쇼걸」 그리고 「스타십 트루퍼스」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는 좋든 나쁘든 비평가에게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피를 지녔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제작자에게 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꼽히고 있다. 돈.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거의 유일한 법칙이자 힘이다. 버호벤은 이 법칙에 의존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특이한 감독으로 꼽힌다. 네덜란드 태생으로 수학과 물리학 박사인 그는 할리우드의 다른 흥행사들조차 놀랄만한 노골적인 섹스와 폭력으로 화면을 채운다. 그러나 이 자극적인 볼거리 뒤편에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치열한 물음을 묻어놓고 있다. 그가 그려내는 SF의 세계는 인간과 과학이 행복하게 만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그것과 다르다. 「토탈 리콜」 「로보캅」 등에 등장하는 미래는 어둡고 절망적이다. 주인공의 자아(自我)는 분열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해피 엔딩이라는 할리우드의 흥행공식대로 끝나지만 「로보캅」의 머피는 인간도 기계도 아닌 이중적 존재로 남는다. 또 「토탈리콜」의 인간들은 부족함없는 물질문명 속에서도 결코 행복하지 않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모티브는 성(性)이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던 시절 이미 양성애(兩性愛)를 지닌 가톨릭 교도의 강박관념을 다룬 「포스맨」으로 섹스, 그리고 인간의 욕망과 이중성을 파헤쳤다. 에로틱 스릴러 「원초적 본능」과 「쇼걸」은 이같은 화두가 할리우드의 상업적 포장을 거치면서 한층 더 강렬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버호벤의 작품은 보는 이의 눈높이에 따라 달라진다. 폭력과 섹스가 여과없이 쏟아지는 흥미 그 자체뿐인 오락영화일 수도 있고, 인간과 사회 미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그의 영화가 물질문명으로 포장된 미국사회의 본질, 세련된 매너와 잘빠진 몸매 속에 가려진 현대인의 본성을 동시대인보다 반발자국 앞서 그려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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