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SBS 「지평선 너머」

  • 입력 1997년 10월 20일 07시 47분


처마 건너편 감나무는 정겨운 까치밥만을 남긴 채 벌써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다. 『레디∼큐』 정을영PD의 다급한 촬영개시 사인이 떨어졌다. 『빈말이라도 고맙다. 이 늙은이가 「보고 자퍼」 왔다니」』 『정말이에요. 흑흑…』 14일 충남 아산시 외암리의 민속마을. 27일 첫회가 방영되는 SBS의 새 일일드라마 「지평선 너머」(월∼목 밤9.00)의 촬영이 한창이다. 빨간 고추가 빽빽히 누워 있는 평상을 사이에 두고 시어머니 강여사(여운계)와 아들의 첩 부용(김영애)이 만나는 장면. 배우는 안약없이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데 세살배기 황구(黃狗) 누렁이는 방송국 패거리가 익숙한지 꼬리를 흔들며 촬영장을 누빈다. 『흐으윽∼컷』 숨이 꼴딱 넘어갈 것 같던 정PD가 마침내 OK 사인을 냈다. 한숨돌린 여운계는 빨간 고추를 만지작거리면서 『분 안바른 사람은 다 저리 가』하고 구경꾼들에게 면박을 준다. 연기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신분과 가치관이 다른 세 가족이 60년대말을 기점으로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겪는 꿈과 갈등을 그린 시대극. KBS 「목욕탕집 남자들」이후 프리랜서를 선언한 정PD와 「당신이 그리워 질 때」의 작가 이금림이 극본을 맡았다. MBC 「까레이스키」의 황인성이 폭력배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하는 수영역으로, 「예스터데이」에서 주목받은 이성재가 장차 검사가 되는 종태로 나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맞부딪힌다. 다시 들어가는 드라마의 한 장면. 마당이 깊은 만호의 집을 무대로 룸살롱에서 일하다 결국 영화배우가 되는 영민(박소현)과 순종적 성격의 영선(송윤아)이 마주쳤다. 딸만 줄줄이 태어나 남편 만호가 시앗을 봤다고 여기는 인실(반효정)은 두딸을 냉랭하게 쳐다보며 갈 길을 재촉한다. 다시 『흐으윽∼컷』 사인이 났다. 다음 장면을 준비하기 위해 30여명의 스태프가 카메라와 조명, 음향 등 장비를 움직이느라 한바탕 난리를 친다. 1백70여년이 됐다는 옛집을 지켜왔다는 한 아주머니는 촬영현장을 무표정하게 지켜본다. 민속마을로 지정돼 처마의 기와 하나 제대로 옮기지 못했던 이 지역에 연일 드라마 제작진이 밀어닥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한숨을 쉰다. 누렁이와 제작진은 자기 일에 바빠 이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아산〓김갑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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