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청소년 상상력 보호할 ‘두뇌 헬멧’ 마련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10일 00시 30분


제20회 생명의 신비상 시상식 개최
인문사회과학 본상 伊 베난티 신부
AI가 부를 자원 불평등 배분도 지적
생명과학 본상 정원석 KAIST 교수

“6만 년 전 인류가 처음 몽둥이를 집어 들었을 때 그것은 도구였을까요? 무기였을까요? AI(인공지능)는 인간 존엄과 공동선을 지키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대주교)가 9일 가톨릭대 성의교정 옴니버스파크에서 개최한 ‘제20회 생명의 신비상’ 시상식에서 인문사회과학 분야 본상을 받은 파올로 베난티 신부(로마 그레고리안대 교수·사진)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윤리신학자가 된 베난티 신부는 2020년 2월 교황청 생명학술원이 발표한 ‘AI 윤리에 관한 로마 호소(Rome Call for AI Ethics)’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AI의 의사결정 과정에 인간 판단이 개입해야 한다는 ‘휴먼 인 더 루프(Human in the Loop)’ 개념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베난티 신부는 AI가 자살 방법을 안내하거나 낙태 같은 생명윤리 사안에 지나치게 중립적인 답변을 내놓는 현상에 대해 “AI의 답변은 일종의 ‘다수 의견 복사판’이라 볼 수 있다”며 “한국 (가톨릭) 순교자들 역시 당시 다수 의견과 달랐기에 목숨을 잃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진리를 증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듯이 ‘다수’와 ‘진리’는 동의어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미지를 생성하는 AI는 인간의 상상력과 내면 세계에 직접 영향을 주는데, 특히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합니다. 저는 교육과 훈련을 통한 ‘두뇌 헬멧’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담배도 초기엔 누구나 피울 수 있었지만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목격한 이후 법과 규제를 만들었습니다. 도로에도 안전장치가 있듯이 AI에 대해서도 가드레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베난티 신부는 AI가 불러오는 불평등 문제도 지적했다.

“AI는 결코 비물질적 존재가 아닙니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 물, 통신망 같은 막대한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자원이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점입니다. AI는 질병 치료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AI 문제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는 “컴퓨터는 고장나면 껐다가 켤 수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며 “AI 시대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깊이 탐구하는 철학과 신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명의 신비상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수호하고 가톨릭 생명윤리를 사회에 확산하기 위해 2006년 제정됐다. 수상자에게는 본상 1억 원, 장려상 3000만 원이 각각 수여됐다.

올해 수상자는 베난티 신부 외에도 생명과학 분야 본상에 KAIST 생명과학부 정원석 교수, 인문사회과학 분야 장려상에 가톨릭대 간호대 김수정 교수, 활동 분야 장려상에 인도 타밀나두주 달리트 공동체 HRDF가 선정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측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준비하며 미래 세대와 함께 생명의 가치를 나누고, 인간 존엄을 지키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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