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총 신탁 수탁액 1059조
1, 2월 5대 은행서만 15조 팔려
금감원 “운용-중도해지 수수료 등 충분히 설명하는지 챙겨보는 중”
올해 들어 은행 고객을 중심으로 상장지수펀드(ETF) 신탁 가입액이 급증하면서 소비자들이 불완전판매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증권 계좌로 ETF를 직접 사고파는 것과 달리, ETF 신탁은 수수료도 높고 장중에 실시간 거래도 어려운데 이를 모르고 신탁으로 ETF에 가입하는 고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높은 수수료에 걸맞은 신탁 상품과 서비스 다양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금융감독원의 ‘2025년 신탁업 영업실적(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 보험, 증권 등 신탁 사업을 겸하는 금융사들의 총신탁 수탁액은 1059조 원으로 1년 전 대비 11.3%(107조9000억 원) 늘었다. 퇴직연금, 채권형, ETF 등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실적배당형 신탁의 잔액이 1년 사이 93조7000억 원 급증한 영향이 컸다.
신탁(信託·trust)이란 소비자가 금융사 직원에게 자산의 관리, 운용, 처분 등을 맡기는 상품이다. 투자처와 운용 방식을 가입자가 직접 정해 금융사에 지시하는 게 특징이다. 신탁 잔액이 급증한 것은 은행이나 증권사에 자금을 넣어 ETF 등으로 투자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결과다. 실제로 1년 사이 증권사의 신탁 잔액은 59조9000억 원, 은행은 47조9000억 원 늘어났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증권사에서 퇴직연금 계좌로 ETF를 투자한 소비자들이 대단히 많아졌다”며 “은행에서 ETF 신탁이 불티나게 팔린 점도 주된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개인들이 단기간에 이 같은 방식으로 ETF 상품에 ‘뭉칫돈’을 넣었다는 점이다. 올 1∼2월 사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팔린 ETF 신탁 판매액만 15조1000억 원에 달한다. 코스피가 오르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7∼12월) 판매액(15조6000억 원)과 맞먹는 수준의 금액이 불과 두 달 만에 팔렸다.
금감원은 은행 고객들이 제대로 된 이해 없이 ETF 신탁에 가입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우선 ETF 신탁에 가입하면 신탁, 중도해지 수수료 등을 부담해야 하며 장중 거래도 할 수 없다. 증권 계좌로 ETF를 간편하고 싸게 사고파는 것과 대비된다. 은행에서 ETF를 사면 신탁 수수료로 연간 거래액의 0.3∼1.2%를 내야 한다. 신탁을 중도 해지했다면 최대 1.2%의 중도해지 수수료 부담도 져야 한다.
금감원이 지난해 4분기(10∼12월) 은행의 판매 실태를 점검한 결과, 고객에게 ETF 신탁 가입과 직접 매매의 차이점을 미흡하게 설명한 사례가 대거 적발됐다. 또 다른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은행 고객들의 고령화 비중이 두드러지는데 이들에게 ‘ETF를 직접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사례도 많았다”며 “불완전판매 소지가 커 관련된 사안을 집중적으로 챙겨 보는 중”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이 수수료 수익만을 좇는 관행에서 벗어나 신탁을 활용한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고민할 때라고 지적한다.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한국재무관리학회에 기고한 논문에서 “분할 매수, 자산 배분 등 상품 다양화로 고객 맞춤형 신탁 서비스에 나서야 한다”며 “정보 비대칭, 투자자 보호 문제 등을 낳지 않도록 판매 직원의 역량 강화도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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