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트닉 “美 생산 아니면 관세 100%”
‘메모리’ 콕 찍어 관세 압박 이례적
삼성-SK ‘포에버 협상’ 국면 초긴장
반도체 관세 협상에 시동을 건 미국이 이번엔 ‘메모리 반도체’를 정조준해 투자를 요구했다. 인공지능(AI) 시대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미국 본토에서 생산토록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국 기업들은 핵심 기술 역량이 압축된 HBM을 국내에서만 생산해 왔다.
이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수백조 원을 들여 차세대 메모리 기지를 건설 중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16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뉴욕주 마이크론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모든 메모리 생산 기업에는 두 가지 선택지만 존재한다”며 “100% 관세를 지불하거나,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여러 차례 반도체 관세를 언급해 왔지만 이번처럼 ‘메모리’를 찍어 ‘투자 아니면 관세’라고 압박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과 대만 메모리 기업에 대한 경고”라고 해석했다.
미국은 그간 메모리 관세에 신중해 왔다. 한국 점유율이 60%를 웃도는 상황에서 관세를 올리면 아이폰부터 AI데이터센터까지 정보기술(IT) 물가 폭등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메모리 관세’라는 강수를 둔 배경에는 최근 HBM발 메모리 칩 공급난이 위기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국 HBM과 대만 파운드리를 모두 미국 본토에 가져와야 ‘미 AI 칩 생태계’가 완성된다고 본 것이다.
미국에 메모리 공장이 없는 삼성과 SK 등은 초긴장 상태다. 특히 HBM과 같은 차세대 메모리의 해외 이전 우려는 한국의 경제 안보와도 직결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긴밀히 소통해 협상해야 할 사안”이라고 전했다.
16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주 클레이에서 열린 마이크론 반도체 공장 착공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로리 차베즈더리머 미국 노동장관. 마이크론 제공
“美 파운드리-패키징 공장 짓고 있는데 메모리까지” 삼성-SK 난감
[美 메모리 반도체도 압박] 러트닉, 마이크론 반도체 착공식서… 경쟁자 韓기업 겨냥 관세 압박 美본토 반도체 생태계 구축 노려 HBM 기술, 경제 안보와도 직결… 960조 용인 클러스터 투자도 변수
인공지능(AI) 시대에 ‘귀한 몸’이 된 고대역폭메모리(HBM)에 대한 미국의 투자 압박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이고 정부도 고심에 빠졌다. 메모리 핵심 공정은 수천 가지 소재 및 부품이 필요해 ‘클러스터’ 형태로 움직인다. 이전 투자 결정이 쉽지 않은 이유다. 게다가 HBM은 차세대 기술로 경제 안보와 직결돼 있다.
하지만 미국이 반도체 관세 협상을 시작하라는 포고문 발표(14일), 대만과의 관세 타결(15일)에 이어 16일(현지 시간) 미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착공식에서 ‘메모리 투자’를 언급한 것은 한국에 대한 강한 압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미 반도체 관세 줄다리기 협상이 불가피할 것이란 의미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차세대 메모리 공장(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을 지방으로 옮기라 하고, 미국은 메모리 공장을 내놓으라고 하는 형국”이라며 “한국의 핵심 기술 산업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용인에 960조 공장 짓는데… 콕 찍어 압박”
현재 미국에는 한국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이 없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위탁제조) 공장이 있고, 370억 달러를 투자해 가동을 앞둔 테일러 공장도 파운드리다. SK하이닉스가 38억7000만 달러를 들여 미 인디애나주에 짓는 것은 후공정인 ‘HBM 패키징’ 공장으로 웨이퍼에 미세 회로를 그리는 메모리 제조 공장은 아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메모리’를 찍어서 투자를 요구한 것이 신규 투자 압박으로 풀이되는 이유다.
삼성과 SK는 과거 비용 절감을 위해 중국에 일부 구형 메모리 생산기지를 두긴 했지만 핵심 메모리 공장은 한국에 두는 것이 원칙이었다. 소재 및 부품 생태계가 가깝게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공장 내 동선조차 보안 사항일 정도로 극비의 전략 시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성과 SK는 이미 경기 용인시 일대에 각각 360조, 600조 원 규모의 ‘K반도체 벨트’ 구축 사업을 추진 중이라 추가 투자 여력이 없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나온 러트닉 장관의 메모리 투자 요구에 삼성과 SK는 긴장한 모양새다. 러트닉 장관은 10월 한미 관세 타결 직후에도 “이번 합의에 반도체 관세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바 있다.
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한국이 대대적인 메모리 클러스터를 짓겠다고 공표한 상황에서 메모리 공장을 직접적으로 언급해 한국 기업들을 압박한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韓 전략산업 해외 이전 우려”
트럼프 행정부는 연일 반도체 강경 행보에 나서는 중이다. 14일에는 반도체 포고문을 발표하며 90일 내 반도체 관세 협상을 개시하겠다고 밝혔고, 다음 날엔 대만과 반도체 관세 협상 타결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협상 모범답안’을 공개했다. 공장을 지어야 관세를 면해 준다는 것이다. 이어진 러트닉 장관의 ‘메모리 관세 100%’ 발언은 남은 협상국이 된 한국에 대한 압박이자, 11월 중간선거용 성과를 동시에 노린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향후 한국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메모리 투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최근 AI발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위원장이 러트닉 장관에게 이달 25일까지 미국 내 HBM 가용 자원을 보고하라고 할 정도로 미 정가의 관심이 높아진 상태다.
또 대만 TSMC가 관세 협상의 일환으로 미국에 신규 투자를 약속한 만큼 한국 HBM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가져오면 미 본토에 ‘AI 반도체 생태계’ 퍼즐이 맞춰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전략산업의 해외 이전 압박은 우리 정부로서도 난감한 이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메모리 생산기지 이전은 한국 반도체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미국과의 협상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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