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우리 쌀 남는데 일본과 계약해 수출하면 어떠냐”
쌀값 폭등에 ‘일시적 상황’ 지적↑…“현실적 제약 커”
日 정책 요인으로 쌀값 고가 기조 이어질 가능성도
“시장·정책 여건 변화 보며 중장기적으로 점검할것”
사진은 지난 5월 22일 일본 도쿄의 한 음식점에서 직원이 그릇에 밥을 담고 있는 모습. 2025.06.10 도쿄=AP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국내 쌀 재고 문제 해소 방안으로 일본에 대한 쌀 수출 가능성 검토를 주문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최근 일본 쌀값 흐름과 중장기 수급 전망을 감안할 때 현실적인 한계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일본 정부가 감산 정책으로의 선회, 쌀 쿠폰 지급 등 가격 하락을 억제하는 정책을 병행하고 있어, 구조적으로 일본 쌀값이 상방 압력을 받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일본 쌀 가격 흐름이 고가 기조를 이어갈 상황에 대비해 대일 쌀 수출 가능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에게 일본 쌀 가격 급등 상황을 언급하며 “우리나라는 쌀이 남아서 시끄러운데 일본과 계약을 체결해 수출하면 어떠냐”며 수출 가능성 검토를 지시했다.
현재 2025년산 쌀의 경우 최종생산량은 353만9000t인데 반해 예상 소비량은 340만9000t에 불과해 약 13만t의 쌀이 남을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초과 생산된 쌀을 시장격리 하더라도 그에 따른 비용이 상당하고, 국내 소비로는 재고 해소에 한계가 있는 상황인 만큼 이를 일본으로 수출해 재고 부담과 재정 비용을 동시에 완화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일본 쌀값 급등으로 지난 상반기 한국산 쌀의 대일 수출이 3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던 최근 흐름도, 이 대통령이 쌀 수출 가능성을 검토하라고 한 배경으로 해석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6월 한국산 쌀의 일본 수출량은 416t으로, 이는 통계가 시작된 1990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다만 농식품부는 “관련 방안을 검토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내년 일본 쌀이 초과 생산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향후 가격이 안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수입 쌀에 1㎏당 341엔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일본 쌀 가격이 내려가면 우리 쌀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25년산 일본 쌀 재배면적은 전년 대비 10만8000㏊(8.6%) 늘어난 136만7000㏊로 최근 5년 중 최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올해 일본의 쌀 생산량은 전년(679만t) 대비 10.2% 증가한 748만t으로 전망된다.
또 2025년산 일본 쌀의 내년 6월 말 기준 민간 재고는 218만~232만t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4년산 쌀의 올해 6월 말 민간 재고(156만t)와 비교해 최대 48.7% 늘어난 규모다.
올해 일본이 쌀값 폭등을 겪었던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 이어진 쌀 공급 부족 문제 때문이었는데, 이처럼 쌀 생산 확대와 재고 증가가 맞물릴 경우 내년에는 가격이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 수 가능성이 높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본 쌀값이 최근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생산 확대와 재고 증가가 이어질 경우 중기적으로는 가격이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관세 장벽까지 감안하면 일본 시장을 안정적인 수출처로 보기에는 제약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이 한국 쌀을 수입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일본은 자국 쌀 보호를 위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오랜 기간 수입쌀 유입 제한 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 쌀이 일본에 일반 소비자 판매용으로 수출된 것도 1990년 이후 35년 만에 처음이었다. 앞서 지난 4월 8일 우리나라 쌀 2t이 통관 절차를 마치고 일본에 정식 수입됐다.
일본 언론들도 일본 내 쌀값 급등이란 ‘일시적 변수’를 한국산 쌀 수입 이유로 꼽고 있다.
니혼게이자신문(닛케이)는 지난 8월 4일 ‘한국산 쌀에 관세가 붙어도 일본 쌀값 폭등으로 일본 시장 내에서 한일 쌀 가격이 비슷해진 점이 수출 증가의 한 원인’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산 쌀의 대일 수출량이 가장 많았던 지난 5월 일본의 평균 쌀 판매가격은 5㎏당 약 4200엔이었다.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는 한국산 쌀 가격이 4㎏에 4000엔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가격 차이만으론 우리 쌀이 일본 시장에서 지속적인 가격 경쟁력을 가지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일본 쌀값이 정상화될 경우 고율 관세 부담이 다시 부각될 수밖에 없어서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당시에는 일본 쌀값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하면서 관세가 붙은 한국산 쌀도 상대적으로 싸 보였던 것뿐”이라며 “쌀값이 정상 범위로 돌아오면 운송비와 1㎏당 341엔의 관세가 그대로 반영돼 가격 경쟁력은 빠르게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향후 일본의 농정 기조를 감안할 때 쌀값이 단기간에 크게 떨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일본 시장의 정책·수급 변화를 면밀히 지켜보며 수출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2026회계연도(2026년 4월~2027년 3월) 주식용 쌀 생산량을 711만t으로 전망해, 2025회계연도 전망치(748만t)보다 약 5%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여름 쌀 부족으로 중단했던 정부 비축미 매입도 내년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지난 10월 출범한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이 쌀 생산 방침을 증산에서 감산 기조로 전환하면서, 일본 언론에선 시장 가격이 과도하게 하락하지 않도록 관리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외에도 쌀 쿠폰 지급을 통해 소비 위축을 완충하고 ‘수요 주도 생산’ 원칙을 법률에 명시하려는 움직임까지 겹치면서 가격 하락을 억제하는 정책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지난달 23일부터 1주일 동안 전국 슈퍼마켓 약 1000곳에서 판매된 쌀의 평균 가격은 5㎏당 4335엔으로, 전주 대비 23엔 올랐다.
3주 전 기록한 종전 최고치 4316엔을 넘어섰으며, 9월 이후 13주 연속 4000엔대를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현재 일본 정부 정책 영향으로 쌀값 상방 압력이 유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단기 성과보다는 중장기 시장성을 점검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도 “현실적으로 관세나 일본 내 한국산 쌀 선호도 등의 이유로 여러 제약이 있지만, 시장·정책 여건 변화를 보며 중장기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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