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일산에서 요식업을 하는 A 씨. 지난해부터 비상계엄 등의 여파로 손님이 뚝 끊기자 ‘돈줄’이 말라갔다. 결국 최근 3개월 이상 이자가 연체되자 그는 채무조정 신청절차를 알아보는 중이다. 50대 자영업자 B 씨도 올해 들어 매출이 전년 대비 20~30%가량 빠지면서 3개월 넘게 원리금 연체 중이다. B 씨는 “두 달째 아내에게 생활비도 못 주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금융 회사에서 돈을 빌린 뒤 석 달 이상 연체해 신용유의자(신용불량자)가 된 개인사업자가 14만 명을 넘어서는 등 1년 새 30%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이 있는 개인사업자 절반은 3곳 이상의 금융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이고, 2금융권 고금리 빚을 지는 경우도 빠르게 늘고 있어 자영업자들이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강일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개인사업자(자영업자 및 기업대출 보유 개인) 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신용정보원에 신용유의자로 등록된 개인사업자는 14만129명에 달했다. 1년 전(10만8817명)보다 28.8%(3만1312명) 늘어난 숫자다. 신용유의자는 90일 이상 장기 연체 등으로 신용정보원에 등록된 이들로, 금융거래 제한 등 불이익을 받는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고령층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60세 이상 신용유의자는 2만8884명으로 전년(1만9538명)보다 47.8% 늘었고, 50대는 33.3%(1만113명) 증가했다. 40대(24.2%), 30대(17.9%)와 비교해 봐도 증가세가 가파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내수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대출 만기 연장 등의 조치로 연명하다 ‘연체의 늪’에 빠지는 중장년층이 늘고 있는 양상이다.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 336만151명 중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는 171만1688명(50.9%)에 달했다. 대출이 있는 개인사업자 두 명 중 한 명꼴로 다중채무자인 셈이다. 다중채무자인 개인사업자가 보유한 대출금액은 693조8658억 원으로, 개인사업자 전체 대출금액(1131조2828억 원)의 61.3%에 달했다.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2금융권에 높은 금리의 자금을 끌어다 쓴 자영업자들이 증가한 점도 문제다. 지난해 말 비은행권에서만 대출받은 자영업자는 79만2899명으로 전년 대비 7% 늘었다.
한편 이렇듯 자영업자의 자금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금융회사의 건전성에도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자금 사정이 취약한 차주들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급등하면서 카드사의 1분기 신용카드 연체율이 약 10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낸 것이다.
하나카드의 1분기 말 연체율은 2.15%로, 작년 동기(1.94%)보다 0.21%포인트 올랐다. 이는 하나카드가 출범한 2014년 12월 이후 최고치다. KB국민카드의 연체율은 1.61%로 2014년 말(1.62%)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신한카드 1분기 말 연체율 역시 1.61%로 2015년 3분기 말(1.68%) 이후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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