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금고지기’에 머물면
혁신-성장 발목 잡을 수 있어
전사적 데이터 실시간 살펴
사전에 위기 상황 차단해야
인텔, 보잉 등 한때 기술 혁신을 주도했던 기업들의 몰락을 두고 재무 성과 중심 경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영에서 재무 성과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지만, 혁신이 곧 정언명제가 된 시대에 재무 성과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기업은 핵심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고재무책임자(CFO)들에게도 새로운 역할이 요구된다. 회사의 ‘금고지기’로서 비용 절감과 재무 안정성에 집중하는 모습을 벗어나 기술 혁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를 결정하고,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리스크 관리, 조직 내 리더십 발휘 등 폭넓은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야 한다.
LS그룹 지주사 CFO 출신이자 핵심 계열사인 LS MnM 대표로 최고경영자(CEO)도 지낸 도석구 LS MnM 상근고문은 이 맥락에서 CFO의 역할로 ‘사전 리스크 관리’를 강조한다. 그는 데이터 중심 경영 체계를 확보해 기업 전반의 지표를 실시간으로 살피며 다양한 위기를 사전 차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지속 가능한 성장 관점에서 자사의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을 도출하고, 미중 갈등 등 글로벌 정세는 물론 ESG 리스크 등을 총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략 전문가의 면모를 함께 갖춰야 한다는 조언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5년 3월 2호(413호)에 실린 인터뷰를 요약해 소개한다.
조직에서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모두 경험한 바 있는 도석구 LS MnM 상근고문은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CFO의 역할은 재무 성과 관리에서 투자, ESG 리스크 관리 등 전략적인 영역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LS MnM 제공 ―CFO를 ‘금고지기’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금고지기라는 말 자체가 ‘게이트 키퍼(Gate keeper)’ 같은 이미지다. 그 사람에게 잘 보여야 금고를 열어주고 우리 사업부에 예산 지원이 잘 나온다는 식의 관념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기업 경영의 최종 목표는 결국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CFO가 금고지기 역할에 머물면 이럴 때 발목을 잡을 수 있다.”
―CFO는 왜 보수적인 경향이 강할까?
“‘마지막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을 잘하면 현업 부서의 공인 반면, 사정이 어찌 됐든 실패하면 CFO의 책임 아니냐 하는 부담감이 있다. 그러나 최종 의사결정은 결국 CEO나 이사회의 몫이다. 책임도 마찬가지다. CEO의 지휘 아래 임원진이 함께 결정한 일이라면 공과를 함께 가져가야 한다. 이 관점에서 CEO부터 사원에 이르는 핵심성과지표(KPI)를 분명히 해야 한다.”
―새로운 CFO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제 CFO는 ‘리스크 사전 관리 최고책임자’가 돼야 한다. 기업이 직면한 리스크는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사후 관리는 이제 소용이 없다. 전통적인 예산 통제 관점의 경영 관리로는 리스크 사전 관리가 불가능하다. CFO가 직접 핵심위험지표(KRI)를 정의하고 사전 관리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무·회계적 관점에서 판단하고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데이터 중심 경영을 줄곧 강조해 왔는데….
“CFO는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이용해 사전에 리스크를 빠르게 포착하고 회사의 가치를 지키거나 창출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러려면 결과와 과정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KPI 관리가 필요하다. 데이터를 토대로 의미 있는 재무 결과를 예측해 전략적 의사결정의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실시간으로 흘러드는 막대한 정보를 통찰해 중요한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이 CFO의 핵심 역량이다.”
―사실상 CEO에 준하는 역할인데….
“불가피한 변화다. 정확하게는 CEO가 최고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CFO가 적시에 정확한 경영 정보를 토스해야 한다. 그래서 CEO와 CFO는 더 긴밀한 관계가 돼야 한다. CFO 출신 CEO들이 과거에 비해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사적 데이터를 종합해 경영 정보를 생산해 온 CFO라면 회사의 여러 비즈니스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의사결정의 역량 차원에서 상대적 장점이 있다.”
―‘재무 성과에만 집중해 핵심 경쟁력을 놓쳤다’는 비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CFO, CEO를 모두 해봤던 입장에선 달리 생각한다. 재무적 관점에서 기술 투자를 줄였다기보다는 애초에 고객의 변화한 니즈나 트렌드를 읽지 못했거나, 그걸 공략하기 위한 답을 잘못 도출한 것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사실 1위 포지션에 있는 모든 기업의 리스크이기도 하다. ‘지금 이렇게 돈을 잘 벌고 있는데 왜 변화해서 엄청난 손실을 낼 수 있는 리스크를 가져가느냐’는 생각에 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키려고만 하면 오히려 더 큰 리스크를 마주하게 된다. 적극적인 신성장동력 발굴을 지원해야 한다. 다만 그 신사업이 자사의 경쟁력과 연결돼 있는지를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CFO의 중요한 미션으로 ESG 리스크 관리도 부상했다.
“리스크 관리자인 CFO는 규제에 정통해야 한다. 기업의 가장 큰 리스크가 규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책임 있는 투자(Responsible Investment)는 CFO 역할에 직결된다. 투자자와의 소통을 주도하는 CFO가 ESG 성과를 재무적 언어로 해석하고 원활하게 전달해야 한다. CFO는 ESG와 재무의 연결점도 찾아야 한다. 이를테면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생산 비용의 절감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재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실제로 LS MnM은 2024년 국제구리협회(ICA)의 책임 구매 인증인 ‘코퍼마크’를 받았다. 이런 부분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CFO 입장에서 CEO나 최대 주주와의 소통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CEO나 최대 주주는 큰 그림을 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매우 많다. 보통 그런 일은 규제, 여타 현실적인 리스크와 부딪히곤 한다. 좋은 CFO라면 그 파급 효과를 따져서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상급자 의견을 따라가지만, CFO는 그래선 안 된다. 기업의 리스크를 사전 차단하는 보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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