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중토위 공익성 심사 ‘실효성’ 의문… 사회적 갈등만 초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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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도안 도시개발사업’ 수용재결 처분
지토위, 검토 없이 토지 수용 결정해 논란

정부는 2019년 토지수용 대상 공익사업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기 위해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을 개정해 공익성 협의와 토지수용사업 정비를 위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고 공익성 심사만 전담하는 위원회(공익성 심사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개정된 토지보상법에 따라 그동안 토지수용사업을 인허가하려는 행정기관이 중앙토지수용위원회(중토위)로부터 해당 사업의 공익성에 관한 ‘의견’을 들어야 했던 것을 바꿔 ‘협의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이같이 협의 절차로 바뀌면서 중토위 협의 의견의 이행력이 담보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법령 개정의 주요 골자였다. 또 동법 시행규칙에 중토위가 승인권자에게 ‘협의 조건의 이행 여부’에 관한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는 규정도 새로 마련했다.

당시 국토교통부 발표는 이 같은 토지보상법 개정을 통해 입법과 사업시행 각 단계에서 토지수용사업의 공익성 검증을 강화해 무분별한 토지수용을 막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아울러 토지보상법 개정으로 중토위의 공익성 검증 기능이 추가되면서 중토위는 공익심사팀을 2개로 늘리고 공익성 검토 방식을 서류 검토 위주에서 현지조사, 이해관계인 의견 청취 등 현장성을 높이겠다고 했다.

“공익성 심사 조건 위반한 강제수용 빈번”

하지만 당시의 법 개정 취지와 달리 공익성 심사를 통과한 사업에 대해 중토위 협의 조건 이행 여부와 관계없이 관할 지방토지수용위원회(지토위)가 토지 수용을 너무 쉽게 결정해 주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전 유성구 용계동 일원에서 추진하는 대전 도안2-5지구 도시개발사업에 대한 대전시 토지수용위원회 수용재결 처분이다. 해당 결정은 지난해 6월 27일 내려졌다.

이 사업에 대한 중토위 공익성 심사(사업인정 협의절차)는 2020년 11월에 통과했는데 당시 중토위는 사업 시행자에게 “해당 사업으로 인한 주민 침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정례회의 또는 상시협의, 주민설명회 등을 통해 토지소유자·이해관계인 등과 갈등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조건을 걸었다. 또 “토지보상법상 공익사업에 필요한 타인 토지는 협의 취득이 원칙이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수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과 사업시행자가 조치계획상 80% 사유지 확보(취득)가 가능하다고 회신한 점을 고려해 제시한 세입자 및 이주 가구 권익보호 대책과 협의취득률 달성을 위해 성실한 협의 절차를 이행해 줄 것”을 조건으로 사업에 동의했다. 그 결과 해당 사업은 토지수용 공익사업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해당 지역 토지주 측은 대전시 토지수용위원회가 이런 중토위의 사업인정 협의조건 이행 여부를 엄밀히 검토하지 않은 채 시행자의 수용재결 신청을 그대로 받아들여 ‘원안 가결’로 재결 처분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안 2-5구역 개발추진위원회 측에 따르면 이 지역 사업시행자가 토지수용 재결을 신청할 당시 사유토지 확보율은 중토위가 제시한 수용신청 조건인 80%에 미치지 못하는 65%에 불과했다.

수용 주민들 “보완사항 이행 안 해도 ‘가결’ 이해 못해”

이에 해당 수용지구의 주민 160여 명은 중토위 협의조건을 전혀 이행하지 않은 수용재결 신청 반려를 요청했지만 대전시 토지수용위원회는 “중토위 사업인정 협의내용은 성실한 협의절차를 이행하고, 제시한 협의 취득률 달성(사유지 80% 취득)이 부득이하게 어려운 경우에는 협의 불가 사유를 명시하는 방법으로 수용재결을 신청하라는 것으로 판단되며 중토위가 부가한 조건은 행정행위의 부관에 해당하는 조건이라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수용재결 사전 단계에서 성실하게 협의절차를 이행하라는 취지의 내용에 불과한 것이므로 소유자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면서 시행자의 수용재결 신청 안건을 ‘원안 가결’로 통과시켰다.

수용지구의 주민들은 해당 토지수용위원회가 수용 재결을 신청하기에 앞서 사전 검토할 때는 “중토위 사업인정 협의 조건 미이행(사유지 80% 확보) 등 보완 사항을 이행한 후에 수용재결을 신청할 것”을 시행자에게 정식으로 보완 통보까지 했는데 정작 그 뒤에 시행자가 보완 사항을 전혀 이행하지도 않고 수용재결을 신청했음에도 이처럼 ‘원안 가결’로 재결처분을 내린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처럼 해당 사업은 중토위가 수용재결 신청 조건으로 제시한 ‘사유지 80% 확보’를 이행하지 않고서도 시행자가 수용재결을 신청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관할 토지수용위원회 역시 ‘원안 가결’로 수용 처분을 내렸다.

수용지구 주민들은 해당 사업과 관련해 ‘시행자의 감정평가서 조작 의혹’ ‘주민이 추천할 감정평가사를 시행자 임의로 선정’ ‘845건의 지장물 보상 누락’ ‘국공유지 취득으로 법적 수용조건 충족’ 등 여러 가지 하자에도 불구하고 대전시 토지수용위원회가 석연찮게 수용재결 처분을 내렸다며 각종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또 해당 사업의 감정평가를 수행했던 평가사가 심의위원으로 있어 공정한 심리·의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주민들이 신청한 기피 신청을 수용위원회가 기각하며 결국 해당 평가사가 이해충돌 문제에도 불구하고 수용재결 심의·의결에 참석하는 등 논란이 있었다. 해당 수용재결 처분에 대해 주민들은 중토위에 이의를 신청했는데 해당 안건은 올 1월 말 심의 일정이 한 차례 연기됐고 2월 말 심의에서도 위원회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3월 말 재심의에서 대전시 토지수용위원회의 재결 처분에 대한 취소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협의불가’ 주장하면 수용재결 무사통과도

경기 김포시 풍무역세권 도시개발사업은 김포도시철도 개통에 맞춰 사우동 풍무역 예정지역 일대 약 87만 ㎡에 대학, 상업시설, 복합시설, 역 광장, 공동주택(6937채)을 갖춘 복합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으로 김포도시관리공사가 2016년 민간사업자를 선정, 진행하는 민관 공동사업이다. 토지 등 소유자는 433명에 달한다.

주민들은 경기도를 상대로 구역 지정처분과 개발계획 수립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각각 제기했는데 2021년 인천지방법원 행정법원은 주민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주민들의 취소 청구 사유로는 2019년 10월 당시 중토위가 시행자에게 제시했던 ‘사유지 면적의 75% 협의매수’ 후 수용재결 신청하라는 조건부 동의에 대한 것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에 대해 중토위는 ‘사유재산 침해 방지를 위한 권고적 의견 제시로서 과도한 보상 요구나 사망 등 부득이한 경우, 미협의 토지에 대해서는 ‘협의불가’ 사유를 명시해 수용재결을 신청하면 된다’라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관련 사건인 인천지법2019구합55921 재판에서 재판부가 중토위에 사실조회한 결과, 동의 조건은 재결신청을 위한 권고적 의견 제시로서 공익성 심사에서 제시한 협의 조건(토지수용 신청 조건)이 ‘단순한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예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중토위 스스로 ‘권고 사항’ 평가절하

중토위가 공익성 심사 강화와 협의의견에 대한 이행력 담보를 위해 토지보상법을 개정하고 조직 및 인원을 늘리고도 뒤늦게 ‘협의 조건은 단순히 권고’라고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 개정 취지를 스스로 부정한다는 것이다.

해당 소송 사건에서 중토위가 법원에 공식으로 제출한 의견 자체가 ‘사유지 면적의 75% 이상 협의취득’ 조건부 동의는 ‘권고’에 불과하다는 것이므로 해당 사업의 토지수용을 관할하는 경기도지방토지수용위원회(경토위)는 시행자의 사유지 확보 조건 충족 여부에 따라 수용재결 신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으므로 다음 해인 2022년 6월 아무런 문제 없이 토지수용이 통과됐다. 중토위가 토지수용 신청 조건을 부여하는 공익성 심사 제도가 말 그대로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민들은 당초 시행자가 경토위에 밝힌 협의율(토지확보율)은 41.68%로 75%를 충족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는데 시행자 측은 수용재결 신청에서는 33.32% 증가한 사유지 면적의 75%의 합의 비율을 제출했고 경토위가 서류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승인 접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33.32%나 증가한 부분에 의문을 갖고 주민들이 서류를 열람한 결과 75%의 명단 중 실제로 협의 진행한 41.68%를 제외한 33.32%의 주민들이 ‘협의 불가자’로 분류돼 있었다는 것이다. 협의 불가자로 분류된 주민은 150여 명이라고 보도됐다. 풍무지구 역시 앞서 대전 도안2-5지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업시행자가 토지수용 재결을 신청할 수 있는 중토위 협의조건(사유토지 확보율)을 이행하지 못했음에도 관할 토지수용위원회는 나머지 사유 토지가 ‘협의불가’하다는 시행자 주장을 그대로 인용해 수용재결 신청을 받아줬을 뿐만 아니라 강제수용 처분까지 내려줬다.

‘대장동 사태’ 뒤로는 개발이익 환수 강요

이른바 ‘대장동 사태’ 이후로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유사한 민관 공동 도시개발사업을 규제하는 법안들을 2021년 9월부터 6건 발의했다. 결국 민관 공동 도시개발사업 출자법인을 설립하는 경우 공모 방식으로만 민간참여자를 선정하고 사전에 사업시행 협약 체결 및 지정권자 승인을 받도록 규제하는 개정 법안이 2022년 6월 시행됐다.

개정 법률에 따르면 지자체나 지방도시공사 등 공공시행자가 민간사업자와 법인을 설립해 도시개발사업을 시행하고자 하는 경우 ‘민간참여자 공모→우선협상대상자 선정→협약 체결 및 승인→출자법인 설립→도시개발사업 구역 지정’ 순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개정 법률은 개정법 시행 이후 최초로 도시개발구역을 지정하는 경우부터 적용하도록 일률적으로 정함으로써 개정 법률이 공포된 2021년 12월 21일부터 법 시행일인 2022년 6월 22일 전까지 6개월 내 만약 구역 지정단계에 이르지 못한다면 다시 공모 단계로 돌아가서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유사한 민관 공동사업으로 아직 구역 지정단계에 이르지 못한 수많은 사업 현장은 민간참여자 지위뿐만 아니라 법인 출자 비용 등 수백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투입 사업비를 그대로 포기할 수밖에 없고 진행하던 사업이 모두 백지화될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당시 경기도에선 지방도시공사가 민간참여자와 함께 사업을 추진하다가 ‘올스톱’된 현장만 해도 ‘오산운암뜰 AI시티 사업’ 등 12건, 총사업비가 13조 원에 달했다.

졸속 입법이라는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국회는 민관 공동 사업의 민간참여자 선정에 관한 적용을 법 시행일로부터 3년 유예하는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후 국회를 통과해 도시개발법 부칙을 신설하면서 이미 민간참여자를 공모의 방식으로 정한 경우에는 개정 법률의 적용을 3년 유예하도록 했다. 아울러 대장동 사업과 같은 민관 공동 사업의 경우 민간참여자에 대한 이윤율 제한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반영해 민간참여자 이익을 총사업비의 10%로 제한하고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내용으로 하위 법령을 개정했다.


윤희선 기자 sunny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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