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특별법 9개월, 피해 1만3000명 중 199명만 구제 마쳐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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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 1년의 그늘]
지지부진한 피해자 지원
주택 경-공매, 최소 2~3년 걸려
살던집 낙찰 받은 사례 133건 불과
근생빌라-다가구주택 거주자는… 현재 법으론 제대로 지원 못받아

직장인 박유하 씨(33)는 2020년 6월 수중에 있는 5000만 원과 대출 1억3000만 원을 합쳐 서울 강서구의 투룸 빌라를 전세로 얻었다. 부동산 중개업체에선 “이전 세입자가 4년 살았던 집”이라며 안전한 집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계약 당일 집주인이 아닌 부동산 임대업체 제임스네이션 직원이 왔다. 계약 후 6개월이 됐을 때 박 씨는 다른 부동산을 통해 이 업체가 세금 20억 원을 체납해 빌라가 가압류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주인은 연락이 두절됐다. 박 씨 거주 빌라는 결국 공매로 넘어갔다.

2022년 7월 시작된 공매는 현재까지 30회나 유찰됐다. 정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았지만 박 씨가 지원받은 건 대출금리 인하와 변호사비 100만 원이 전부였다. 박 씨는 “첫 직장을 얻고 모은 5000만 원이 모두 사라지게 됐다”며 “돈이 없어 현실적으로 이사도 불가능하고 3월에 해당 주택을 직접 낙찰받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해 6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을 시행한 지 9개월이 지났다. 765명이었던 전세사기 피해자는 올해 1월 말 기준 1만3000명으로 17배로 불어났다. 그중 피해 주택을 낙찰받는 등 구제 절차가 마무리됐거나 종결을 앞둔 피해자는 199명(1.5%)뿐이다. 근린생활시설 빌라(근생빌라)나 다가구주택 등 정부 지원 대상이 아닌 사각지대가 많아 특별법 수정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끝나지 않는 고통


27일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따르면 21일 기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1만2928명이다. 이 중 우선매수권을 활용해 경·공매를 거쳐 세입자가 살던 집을 낙찰받은 사례가 133건이다. 또 LH가 우선매수권을 받아 직접 매입한 사례가 1건, 매입이 가능해 통보한 경우가 65건으로 파악됐다. ‘셀프 낙찰’은 보증금을 자산 형태로라도 일부 보전받게 됐다고 볼 수 있다. LH 매입의 경우 피해자에게 저렴하게 재임대하기 때문에 강제 퇴거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피해 구제가 마무리된 사례가 아직 200건이 채 되지 않는 것은 경·공매 자체가 최소 2, 3년이 걸리는 긴 절차이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책도 경·공매 기간에 세입자가 버틸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존 전세대출을 저리로 대환해 주거나 미상환 전세대출을 최장 20년 무이자로 분할 상환하도록 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피해 주택을 낙찰받았다고 해도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 A 씨는 2022년 4월 사기 피해를 당했던 전셋집을 1억4200여만 원에 낙찰받은 후 가격을 1000만 원 낮춰 매물로 내놨다. 보증금 1억9800만 원 중 일부라도 건지고 싶었지만 2년 3개월이 지난 현재 집을 보러 온 사람은 1명밖에 없었다.

2017년 3월에 지어진 신축에 속하지만 주거용으로 활용할 수 없는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된 탓이다. A 씨는 주거용 주택으로 원상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전부 부담하겠다는 조건까지 걸었지만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A 씨는 “근린생활시설 불법 사용에 대한 이행 강제금만 280만 원 납부하고 취득세도 800만 원을 냈다”며 “전세사기에 대응한 소송 비용에도 2000만 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 근생빌라·다가구 등 지원 사각지대 여전


피해 지원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는 경우도 있다. 주거용이 아닌 건물을 주거용으로 개조한 근생빌라나 다가구주택 거주자의 경우 현재 특별법으로는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결혼을 앞뒀던 박재우 씨(32)는 2021년 1월 보증금 1억9000만 원 중 1억5200만 원을 대출받아 서울 금천구의 한 빌라에 입주했다. 해당 물건은 전세사기 조직의 물건이었고 박 씨는 보증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정부의 도움을 받아보려 했지만 근린생활시설을 주거용으로 사용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박 씨는 “피해자가 대부분 저와 같은 20, 30대 청년인데, 다들 해결될 것이란 희망이 없다”며 “정부가 근린생활시설도 지원 대상에 포함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세대주택처럼 호수별로 소유가 나뉘어 있지 않은 다가구주택은 주택을 통째로 낙찰받아야 해 그만큼 피해자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크다. 세입자 간 협의 과정도 복잡하다. 대전에서 발생한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피해자 김모 씨(39)는 “최근 같은 건물에 사는 후순위 임차인 4명과 경매 참여를 논의하다가 포기했다”며 “예상 낙찰 금액만 18억 원으로 1명당 4억5000만 원씩 부담해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를 당하기 전에 이를 사전에 거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입자가 계약 전 사기를 당하지 않게 꼼꼼하게 살펴야 하고, 이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현재 피해를 당한 분들 중 근린생활시설, 다가구주택에 대한 지원책도 일부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전세사기#피해자 지원#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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