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방지책 시행땐 빌라 33% 보증 탈락… 불안한 세입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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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전세시장 ‘사기 후폭풍’]〈하〉 ‘보증보험 요건 강화’ 실효성 논란
빌라 ‘무자본 갭투자’ 차단 위해 정부, 5월부터 전세보증 범위 줄여
보호 못받는 세입자 월세 내몰리고 전세 수요 줄어 집주인도 불만 커져

14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평소 같으면 유리 외벽을 뒤덮었을 빌라 매물 전단이 하나도 붙어 있지 않았다. 지난해 10월부터 본격 불거진 전세사기 이후 빌라 매매나 전세 계약은 물론 문의까지 거의 끊겼기 때문이다. 인근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사기 방지 대책이 나왔지만 화곡동 빌라 전세시장은 거의 마비됐다”며 “세입자나 집주인 모두 불만인 상황”이라고 했다.

대형 전세사기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며 최근 정부가 전세사기 방지 대책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대책대로 5월부터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 요건을 강화할 경우 빌라 세입자 10명 중 3명은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 자본 없이 전세금을 끼고 빌라를 대거 사들이는 ‘무자본 갭투자’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에 따른 것이지만 이들 세입자는 전세금 일부를 월세로 돌리지 않으면 보증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보증보험 대상 축소…일부는 월세로 전환해야
동아일보가 14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활용해 수도권에서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이 90%를 초과하는 빌라는 32.7%인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전세사기 방지 대책을 통해 올해 5월부터 전세보증 비율을 집값의 100%에서 집값의 90%로 낮추는 방향으로 보증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한 만큼, 수도권 빌라 세입자 10명 중 3명꼴로 보증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의미다. 이는 2021년과 지난해 각각 전세와 매매 실거래 신고가 이뤄진 수도권 빌라 7588곳을 분석해 2021년 전세보증금과 지난해 매매가를 비교한 결과다.

특히 현재 빌라 매매가가 떨어지고 있는 데다 4월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전년 대비 크게 하락할 경우 보증제도에서 탈락하는 세입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동산팀장은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화하며 세입자 월세 부담이 생기고 전세 수요가 급감하며 선량한 임대인들마저 세입자를 구하는 데 애를 먹을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부동산 업계는 이 같은 방안이 전세사기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데에는 큰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서울시내 한 공인중개사는 “깡통전세가 경매로 넘어가면 매매가의 70∼80% 수준으로 낙찰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전세가율 100%나 90%나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인천 미추홀구 빌라촌 인근의 공인중개사는 “빌라는 아파트와 달리 시세가 각각 다른데 보증보험 가입이 어려워지면 세입자들은 어디에서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월세 낼 여력이 없는 세입자들은 주거 환경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세 회의론’까지…“순기능 살린 보완책 필요”
근본적으로는 전세 제도가 부실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추가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전세사기 사건을 근절하긴 힘들 것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전세난이 극심했던 2010년대에 전세 대출이 보편화됐고 이후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연립·다세대주택의 전세가율이 2017년 100%까지 높아졌다. 집값에 육박하는 전세 보증금을 저리로 대출해주고, 정부가 이를 다시 보증해주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전세 거품’이 쌓인 셈이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제도권 금융의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집주인들이 일종의 사금융인 전세를 주택 구입에 이용하며 오히려 경제 시스템 리스크를 키운 측면이 있다”며 “전세보증금과 전세 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 포함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전세 제도 자체가 수명을 다했다”는 ‘전세 회의론’까지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전세의 순기능은 살리되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성용 한국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전세 대출을 일부 받더라도 대출금을 갚아가며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만큼 전세는 서민들의 강제 저축 수단이자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한다”며 “매매와 월세의 완충 작용을 하는 전세가 사라지게 되면 향후 월세 급등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먼저 예치하고 이를 사용하는 만큼 반환보증에 가입하도록 하는 방안이나 신탁기관에 임대주택을 등록하고 실제 임대 계약이나 운영은 신탁기관이 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언급된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세입자 보호를 위해 은행의 전세 대출을 보증해주는 상황인 만큼 대출 심사 강화 등을 통해 전세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전세사기 방지책#빌라#실효성 논란#보증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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