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국산화 길 개척… “혁신이 기업경영의 핵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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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기업이 미래다] 덕산그룹

이준호 회장
이준호 회장
‘소재 산업 입국, 그 중심 기업 덕산’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국내 소재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며 국익에 이바지하고 있는 기업인이 있다. 덕산그룹 이준호 회장이다. 이 회장은 제조업의 근간은 소재에서 시작된다는 신념으로 소재 국산화의 어려운 길을 스스로 개척하며 걸어온 모범 경영인이다. 국내 대표적인 ‘벤처 1세대’ 기업인인 이 회장은 덕산그룹이 소재 산업을 통해 나라 번영의 일익을 맡겠다는 포부를 내세워 ‘소재 산업 입국(국력을 길러 나라를 번영하게 한다는 뜻)’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고 한다.

외환위기로 IMF의 구제 금융을 받던 1999년, 이 회장은 54세의 나이로 반도체 핵심 후공정 소재인 ‘솔더볼(Solder ball)’을 생산하는 덕산하이메탈을 창업했고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현재 IT 소재를 생산하는 3개의 상장사를 포함해 모두 9개의 기업군으로 이뤄진 덕산그룹을 키워냈다. 이 회장이 국내 최초로 생산하기 시작한 솔더볼은 반도체와 기판을 연결해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초미세 소재이다. 이 회장이 덕산하이메탈을 창업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반도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솔더볼 전량을 일본 등으로부터의 수입해 왔다. 하지만 이 회장이 양질의 솔더볼 양산에 성공하며 소재 국산화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이후 무연솔더볼, 미세솔더볼, 도전볼, 솔더페이스트 등 반도체 후공정 소재를 잇달아 개발하면서 덕산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기술력을 인정받아 동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 2위 기업이 됐다. 이는 이 회장이 평소에 생각하던 혁신을 실천한 결과였다. 이 회장의 좌우명인 주역에 나오는 경구인 ‘天地之大德曰生(천지지대덕왈생, 세상천지에 새 생명이 태어난 것만큼 큰 덕이 없다)’을 기업에 적용해 ‘혁신(새로움)이 곧 기업 경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무엇보다 반도체 산업의 불모지였던 울산에서 이러한 사업을 개척해 성공했다는 점에서도 이 회장의 업적은 높게 평가받는다.

현재 덕산그룹은 그룹사의 지주회사인 덕산홀딩스를 비롯해 △반도체 후공정 소재 전문 기업인 덕산하이메탈 △우주항공 및 방위산업인 덕산넵코어스 △도금 전문 업체인 덕산산업과 덕산갈바텍 △디스플레이 소재를 담당하는 덕산네오룩스 △OLED 중간 소재와 반도체 소재인 헥사클로로디실란(HCDS)을 생산하는 덕산테코피아, 벤처기업 투자 전문 회사인 티그리스인베스트먼트, 솔더볼의 원자재인 주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해외 법인 DS미얀마로 구성돼 있다.

기술 혁신 한 우물… 정도경영으로 단계적 성장 이뤄
이 회장은 벤처 1세대 기업인이다. 벤처기업으로 성공하기도 어려운데 이 회장의 경우는 벤처기업의 성공을 바탕으로 그룹사 체제를 구축할 정도로 사업 성장을 이뤄낸 드문 케이스다. 이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최근 자서전인 ‘이정표 없는 길을 가다’ 출간을 계기로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그는 자서전을 펴내면서 “소위 지역의 성공한 벤처 1세대로서 어떻게 도전하고 혁신해 성공했는지를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기업 활동을 하면서 평소에 생각하고 실천했던 정도경영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무엇보다도 한발 먼저 길을 간 자신의 이야기가 새롭게 창업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벤처의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자서전에는 벤처 1세대로 겪은 어려움을 극복한 도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회장은 현대중공업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이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스카우트돼 부장으로 진급했으나 회사 생활 10년 만에 퇴사하고 1982년 덕산산업을 창업하면서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 초기에는 전 직장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현대중공업 등에 조선 부품을 납품했으나 곧 납품 사업의 한계를 깨닫고 울산에서 최초로 도금 사업을 시작했다. 도금 사업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며 사업을 확장하던 중 IMF 불황이 한창이던 1999년, 울산 벤처기업 1호인 덕산하이메탈을 창업했다.

벤처사업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 회장은 애초 실험실에서 개발된 장비의 가능성을 믿고 투자했으나 공장에서 실제로 생산해 보니 생산량이 애초에 생각한 수량의 10%도 되지 않았으며 생산된 제품도 정상적인 제품으로써 갖춰야 할 요구 품질에 훨씬 미달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까지 얻어가며 3년 이상 직원들과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제품의 생산과 품질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결국 솔더볼 국산화에 성공했다. 2002년 삼성전자에 납품하면서 회사의 질적, 양적 성장이 이뤄졌으며 덕산하이메탈의 소재들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 인텔, 퀄컴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모두 선택한 고품질·고부가가치 소재로 인정받고 있다. 그 결과 2000년대 이미 솔더볼 분야에서 세계 2위 생산 업체로 성장하는 성공 신화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

글로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 업체로 관련 분야 세계 선두 기업으로 꼽히는 덕산네오룩스도 이 회장이 기록한 성공 사례 중 하나다. 2008년 매출액이 30억 원에 불과한 영세업체를 210억 원의 거금에 인수해 기술 개발에만 100억 원 이상을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OLED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전체 임직원 중 절반가량을 기술 개발 부문에 배치할 정도로 기술 개발에 힘을 쏟은 결과 경쟁 기업과 차별화된 기술을 실현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지난해 매출 1767억 원으로 큰 폭으로 성장했다.

2021년에 덕산네오룩스는 세계 최초로 에코 스퀘어 OLED(Eco² OLED) 핵심 비발광 소재인 블랙(Black) PDL(Pixel Define Layer)을 선보이는 등 기술 차별화 경쟁력을 실현했으며 블랙 PDL은 현재 갤럭시 Z-폴드3에 적용되는 등 활용폭을 넓혀나가고 있다.

또 2006년 반도체 소재를 생산해 납품하고 있던 업체를 인수해 덕산테코피아를 설립했다. 현재 반도체 박막 형성용 증착 소재로 반도체 전 공정 소재인 HCDS(헥사클로로 디실란)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서 공급하고 있다.

덕산하이메탈, 덕산네오룩스, 덕산테코피아 등 상장 3사의 기업 가치는 현재 약 2조 원 규모이며 매출은 약 5000억 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덕산넵코어스를 인수해 항법 장치를 개발하는 등 방산 사업 쪽으로도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 회장은 “기업 경영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다 보면 쉬운 길을 택하고자 하는 유혹도 받게 되는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옳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는 정도경영 정신으로 임한 덕분에 오늘날과 같이 그룹이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사회공헌도 주목 “지역사회와 동행할 것”
이 회장은 평소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기부를 하는 사회공헌 활동에 힘쓰고 있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봉사하고 이바지하는 것이 가진 자나 기업가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울산공동모금회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누적 금액 6억 원 이상을 기탁했으며 아산병원에는 불우환자에 대한 진료비 지원을 위해 현재까지 6억 원을 기부했다. 또 2022년에는 지역의 울산대학교병원에 소아 재활원 설립을 위한 병원 발전 기금 1억 원을 기부했다.

이 회장은 좋은 인재를 키워내는 것 역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이라고 여긴다. 그는 “오랜 시간 치열한 산업 현장을 누비며 기업 경영에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는 결국 사람이 해결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과학기술 인재의 중요성을 절감해 일찍부터 한국로타리장학문화재단에 장학금을 출연해 왔고 2017년에는 본인이 직접 장학재단(유하푸른재단)을 설립해 장학금을 지급하며 이공계 인재 육성을 위한 사회공헌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재단은 현재까지 장학생 총 100명을 선발해 7억 3400만 원 규모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2021년에는 학생들에 대한 창업 교육과 청년 창업 활성화에 써달라며 유니스트(UNIST, 울산과학기술원)에 사재 300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 기부는 유니스트 개교 이래 가장 큰 규모였으며 울산 시민의 염원으로 탄생한 유니스트의 성장 발전을 위해 울산 지역 출신의 향토 기업인이 기부를 했다는 점에서 당시 전국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유니스트는 이 회장의 기부금에 정부 예산 300억 원을 더해 총 600억 규모로 학생 창업 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챌린지융합관을 건설 중이다. 거금을 쾌척한 배경을 묻자 이 회장은 “나 자신이 울산 벤처 1세대이고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 이 자리까지 왔다. 내가 지역사회에서 받은 도움을 지역사회에 돌려주려고 한다”며 겸손을 표했다.

“울산 지역에서 많은 스타트업 창업되길 희망”
이 회장의 고향인 울산은 주력 산업인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같은 중화학공업이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며 지역의 소득과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지역의 산업과 경제에 보탬이 되는 방법을 고민해 왔으며 결국 자신이 성공했던 벤처기업 활성화를 통해 지역의 전통 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로운 산업 생태계 구축에 대한 해법은 스타트업 활성화라고 본다”라며 “울산 지역 내에서 많은 스타트업 기업이 창업되고 성공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은퇴하면 지역의 벤처 산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계획이다. 앞으로 약 1000억 원 규모의 공익재단을 설립해 울산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과 울산 출신의 유니콘 기업 육성을 위해 헌신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유니스트에 학생들의 창업 교육을 위해 성금을 기탁한 것도 이 회장의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 회장은 “제2의 덕산이 울산에서 나오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을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황해선 기자 hhs255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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