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일본은 1985년 과학기술 협력 협정을 체결한 이후 고위급 회담, 정보통신기술, 전파 및 원자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공동연구 등을 지원하면서 인력교류도 활발하게 진행했었다. 한일 과기장관 회담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협력 협의회를 2007년부터 총 4회 개최하며 양국 과학기술·디지털 정책의 현황을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중단된 한국과 일본 정부 간 과학기술 협력은 과학기술인으로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일본과 과학기술 협력 협정을 체결한 1985년만 해도 대한민국은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들의 과학기술을 배워 모방하는 단계에 있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일본과의 기술격차가 상당했고, 양국 협력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기술 분야가 전무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간 국내 기술 수준이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2019년 ‘소·부·장 사태’에서도 한국은 발 빠른 기술 국산화를 통해 당당하게 극복했다. 2023년 현재 의료바이오, 우주기술 등 많은 분야에서 일본과의 기술격차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ICT 융합,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에서는 일본을 앞서기도 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국가로 성장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일본과의 기술 협력에 있어 주도권을 갖고 양국 간 관계를 이끌어 갈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
일본은 신소재·바이오·나노 등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우주·에너지 등의 영역에서도 여전히 높은 기술력을 가진 국가이다. 한·일 과학기술·디지털 협력이 재개된다면 고위급 회의체를 통해 첨단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공동연구, 청년 과학자 파견 등 미래를 이끌 인재들 간의 교류 확대, 안보 관련해서 한-미-일 기술 공조 등 다양한 의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인공위성 기반 초정밀 위치·항법·시각 정보 시스템과 같은 우주 분야, 초고속 세포분석 기기를 포함한 바이오 분야, 양자컴퓨팅·양자통신 등 양자 기술 분야, 수소·핵융합을 활용한 탄소중립 기술 분야 등에서 국제공동연구를 통한 협력 여지가 클 것으로 보이며, 연구자뿐만 아니라 관련 기업 간의 교류 또한 증가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가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일부 협력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서는 일본과 협력을 통해 기술개발의 속도를 높일 수 있고, 양국이 공통으로 사용할 예정인 위성항법용 주파수 대역의 보호 등 공동관심사에 있어 국제무대에서 함께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나아가,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일 양국이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황사, 자연재해, 새로운 감염병 등의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일본이 먼저 경험했던 사회적 문제, 예를 들어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의료 관련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5G 통신 활용도 협력이 긴요하게 이뤄질 수 있는 아젠다가 될 수 있다. 이처럼 한·일 간의 과학기술 협력은 한·미·일, 한·일·아세안, 더 나아가 전 지구적 공동 대응 이슈까지 협력을 증진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글로벌 과학기술 강국과 디지털 모범국가를 향한 도약의 길 앞에 서 있다. 양자기술의 산업 활용도는 무궁무진하고, 인공지능 기반 산업도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되며, 우주 및 첨단바이오 등 새로운 미래를 가져다 줄 과학기술 분야가 너무나도 많다. 첨단기술 분야의 원천기술을 빠르게 확보하고, 신산업을 육성하여 청년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주는 국가로 발돋움해야 할 때이다. 이 과정에서 한·일 과학기술 및 디지털 협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일 양국 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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