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NOW]
성능 비슷한 저가제품 찾지 않고 정보력 바탕 본래 소비욕구 충족
음식 함께 주문해 배달비 없애고 동네사람끼리 소 한 마리 사 분배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겹치며 비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가성비 소비’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그림 구독 서비스
‘오픈갤러리’(위쪽 사진)는 본인이 소유한 그림을 타인에게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고, 일본의 ‘리렌트 레지던스
시부야’(가운데)는 입주자가 바깥에 머무는 기간에 집을 타인에게 숙소로 제공하면 해당 일수만큼 임차료를 깎아 준다. 공동구매
플랫폼 ‘우동공구’는 혼자 구매하기 어려운 물품을 이웃들과 나눠 살 수 있도록 한다. 각 사 제공
경기 침체가 심상치 않다. 그동안 주요 화두가 ‘팬데믹’과 ‘엔데믹’이었다면, 2023년은 ‘경제’의 영향을 오롯이 받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반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컸던 2008년 금융위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들린다.
일반적으로 불황기에는 ‘가성비’ 소비가 두드러진다. ‘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인 이 단어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매할 때 브랜드 후광 등 불필요한 속성을 제외하고, 가격과 성능이라는 두 가지 속성에만 집중하는 일종의 알뜰 소비를 일컫는다. 대륙의 실수란 별명이 붙었던 ‘샤오미’ 브랜드나 가격 대비 대용량으로 인기를 끄는 마트·편의점의 자체 브랜드(PB) 상품이 대표적인 가성비 아이템이다.
소비자가 구사하는 가성비 전략도 시대 변화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본래 갖고 싶은 브랜드 상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싼 가격이 부담스러워 유사한 성능이지만 값은 훨씬 저렴한 제품을 차선으로 선택하는 행동이 ‘가성비 1.0’이라면, 요즘 소비자가 보이는 ‘가성비 2.0’은 ‘본래 갖고 싶은 제품을 어떻게든 취하는 행동’ 정도로 정의된다. 소비 금액을 줄인다는 점은 닮았지만, 소비 지출을 전략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다르다.
가령 50만 원짜리 와인을 마시고 싶다고 가정해 보자. 비싼 가격이 부담스러워 이 제품과 가장 유사한 맛이 난다고 알려진 저렴한 와인을 찾아나서는 방식은 예전의 가성비 전략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본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50만 원짜리 와인 같이 마실 분’을 다섯 명 정도 찾아 각자 한 잔씩 마셔보는 경험을 누린다면 이것이 바로 요즘 사람들의 가성비 전략이다. 자원이 부족하다고 해서 무조건 포기하거나 줄이기보다는 나름대로의 방안을 찾아내 ‘비용 대비 효용’을 극대화한다.
최근에는 이들의 욕망에 날개를 달아주는 각종 플랫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두잇’은 배달비 없는 배달음식 서비스를 표방하는 ‘배달 공구 애플리케이션’이다. 자장면 한 그릇이 먹고 싶을 때, 앱을 켜서 ‘팀주문’을 열고 근처에 사는 다른 사람 세 명을 더 모으면 배달비가 공짜다. 이웃의 배달음식 수요를 실시간으로 묶어 배달비를 없애는 형태다. 지역 기반 공동구매 플랫폼 ‘우동공구’는 혼자 구매하기에 부담스러운 물건을 이웃들과 나눠 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최근에는 동네 사람들끼리 소 한 마리를 도축한 후 나눠 갖는 ‘우리 동네 소 한 마리’ 서비스도 선보였다.
내가 가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소비 욕망을 충족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의 ‘리렌트 레지던스 시부야’는 한 달 월세가 약 200만 원에 달하는 고급 오피스텔이다. 특징은 “외박을 하면 그만큼 월세를 깎아준다”는 점이다. 세입자가 전용 앱을 통해 3일 전에 외박을 신청하면, 빈방을 일반인에게 호텔로 빌려주어 이익을 내고 그 이익의 일부를 거주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하루당 약 6만 원의 월세가 할인되고, 최대 15일간 외박이 가능하다. 그림 구독 서비스로 유명한 ‘오픈갤러리’는 내가 구매한 그림을 다른 사람이 구독할 수 있도록 빌려주어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추가했다. 좋아하는 그림을 소유할 수도 있고, 대여해 수익도 창출하고 나아가 시세 차익까지 기대해볼 수 있어 인기다.
경기 불황 속에서 꽃피는 ‘가성비 2.0’ 소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소비자의 문제 해결 능력’이다. 자원이 부족하다고 해서 무조건 값싼 브랜드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지식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소비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노력한다. 한정적인 여건을 현명하게 극복하는 ‘현대판 보릿고개 넘기’ 방안이다.
더 큰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런 소비 행태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기업이라면 변화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 값싼 가격으로 승부를 걸기보다는, 소비자 스스로 가치 있는 제품을 합리적으로 구매하는 방안을 찾도록 유인하는 전략이 유효할 수도 있다. 성능을 낮추고 가격을 조절하기보다는 비싼 제품은 비싼 대로, 값싼 제품은 값싼 대로 각자의 구매 이유를 분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가성비 2.0’ 소비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본래의 욕망에 충실하라’는 주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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