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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이재용-손정의 빅딜? 당신이 알아둬야 할 ‘암(ARM)’ 이야기[딥다이브]

입력 2022-10-05 09:58업데이트 2022-10-0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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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1일 방한했습니다. 동아일보가 김포국제공항 입국 장면을 단독으로 사진 촬영하기도 했는데요. 손 회장의 방문이 모든 언론의 초미의 관심사인 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3일 두 사람이 이미 만난 게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다는데, 어디도 확인을 못하고 있네요.) 이미 국내외 언론이 지난달 말 ‘삼성전자 ARM 인수설’을 호들갑스럽게 보도하기도 했죠. 삼성전자 주식을 들고 있는 561만 소액주주 분들은 ‘이게 혹시 삼전 주가를 구할 호재인가?’라고 귀를 쫑긋 세웠을 텐데요. 그동안의 뉴스를 자세히 보신 분들은 파악하셨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삼성전자가 단독으로 ARM을 인수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삼성전자 혼자 독차지하기엔 업계에서 ARM 위상이 남다르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ARM은 깊이 들여다보면서 반도체 산업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반도체, 어려울 것 같다고요? 전혀요. 아마 재미있을 걸요?😉
모바일은 이미 ‘암’ 세상
ARM. 1990년에 세워진 영국 캠브리지를 본사로 둔 기업인데요. 우선 이것부터 알고 가시죠. ‘에이알엠’이라고 읽을까요, ‘암’이라고 읽을까요? 정답은 둘다 맞다. 보통 영어권에선 ‘암’이라고 읽고요, 한국에서는 ‘에이알엠’이라고 많이 읽습니다. 어느 것도 틀린 건 아니에요.

크게보기ARM의 영국 캠브리지 본사. ARM 홈페이지
ARM은 반도체칩의 기본 설계 도면(아키텍처)을 만들어 파는 회사입니다. 누가 사가냐고요? 반도체칩을 만드는 내로라하는 기업들, 애플·삼성전자·퀄컴·화웨이 등 거의 대부분 기업들이 사갑니다. 기본 설계를 직접 하는 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ARM의 설계 코드를 사서 쓰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인 거죠. ARM은 양쪽으로 돈을 법니다. ①처음에 라이선스 비용을 받고요(일회성). ②몇년 뒤에 그 도면을 가지고 만든 제품(칩)이 나오면 팔릴 때마다 로열티를 뗍니다(칩이 많이 팔리면 로열티도 늘어남). 딱 봐도 느낌 오시죠? 마진율이 꽤 높은 사업구조입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과 태블릿에도 ARM 계열 프로세서 칩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이폰이든, 갤럭시든요. 모바일 쪽에선 ARM 점유율이 95%나 되거든요. 압도적이죠.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볼게요.

반도체 잘 모르는 분도 CPU가 뭔지는 대강 아시죠?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요. CPU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인텔이 꽉 잡고 있죠. 스마트폰에선 CPU 같은 역할을 하는 반도체를 AP라고 부르는데요. 인텔이 AP까지 하면 될 텐데, 왜 ARM에 시장을 다 내줬을까요.

결정적인 차이는 ‘소비 전력’에 있습니다. 인텔은 CPU의 성능을 빵빵하게 하는 데 집중했어요. 소비전력은 신경 쓸 필요 없었죠. 어차피 PC는 대부분 시간 동안 전원이 연결돼있으니까요. 발열? 냉각팬 달면 그만이죠. 그래서 인텔이 쓰는 명령어(이름이 ‘X86’)은 복잡해요. 뭐랄까, 명령어가 복잡해서 계산하려면 머리에서 열이 날 것 같은 느낌?(고전력&고발열)

그런데 ARM은 훨씬 단순하고 짧은 명령어를 써요. 비유하자면 인텔이 ‘2³’을 계산할 때 ARM은 ‘2×2×2’를 계산하는 식이랄까요?(어디까지나 비유입니다.) 당연히 전력도 조금 쓰고, 발열도 적습니다. 하루 한번만 충전한 뒤 들고 다니는 휴대폰에 딱이죠.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ARM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그럼 ARM 앞날엔 밝은 미래만 창창하냐고요? 아마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그렇게 봤으니까 2016년 무려 320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36조원)를 주고 ARM을 인수했겠죠?
손정의 회장의 빗나간 예상
“싸게 사서 신난다.” 손정의 회장이 2016년 7월 ARM 인수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입니다. 소프트뱅크는 당시 주가에 43%나 프리미엄을 얹어주고 ARM을 인수했는데요. 소프트뱅크 역사상 가장 비싼 딜이었습니다.

크게보기ARM을 기반으로 한 사물인터넷용 칩. ARM 공식 블로그
당시 손정의 회장은 “사물인터넷(IoT) 시대 챔피언은 ARM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IT 장치가 모두 인터넷에 연결되는 사물인터넷 시대가 곧 열릴 거라고 보고 통 크게 베팅한 건데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IoT 시대, 도대체 언제 오나요? 요즘엔 IoT 얘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손 회장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그렇다고 ARM이 좌절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른 새 먹거리가 있거든요. 바로 PC와 서버 시장이죠. PC와 서버는 둘 다 인텔의 아성이 아주 굳건한 시장인데요. ARM이 꽤 성공적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한 겁니다.

애플이 2020년 11월 첫 자체 프로세스 M1칩을 내놓았을 때 다들 깜짝 놀랐던 것 기억하시나요? ARM 도면을 가지고 애플이 맥북용 칩을 만들어 냈는데요. 그 성능과 속도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소비자들은 환호했고, 인텔은 기절할 판이었죠. ‘ARM=저전력이지만 저성능’인 줄 알았는데, ARM으로도 인텔 뺨치는 성능을 보여줬으니까요. (물론 이건 다 ‘애플이어서 가능한 일’이란 평가가 많음)

서버 시장에서 치고 나가기 위해 아예 ARM을 통째로 인수하려 했던 반도체 회사도 있었죠. 바로 미국 엔비디아였는데요. 2020년 9월 엔비디아는 400억원 달러(당시 기준 47조원)에 ARM을 인수하기로 소프트뱅크와 합의했습니다. 돈이 부족했던 엔비디아는 ‘현금+자기네 주식’을 ‘영끌’해서까지 ARM을 집어 삼키려고 했죠.

잇따른 투자 실패(위워크·디디추싱·우버…)로 쪼들리던 소프트뱅크에겐 모처럼 대박(4년 여 만에 차익이 11조원)의 기회였습니다. 이후 엔비디아 주가가 뛰면서 매각대금이 600억 달러까지 치솟기까지! 하지만 이 M&A는 올 2월 결국 무산되고 맙니다.
삼성전자는 그래서 뭘 하는데?
크게보기애플은 2020년 ARM 기반의 M1칩을 공개했고, 2022년 6월 차세대 M2칩을 선보였다. 애플 홈페이지
‘누구나 갖고 싶지만 아무도 살 수 없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합병이 무산되면서 이런 말이 나왔죠. 반도체 M&A가 성사되려면 8개 나라에서 반독점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라도 반대하면 M&A는 물건너 가는데요. 엔비디아 역시 미국, 영국, EU 규제당국의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죠. 규제당국 뒤에 퀄컴·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인텔이 있었다는 건 알려진 사실입니다.

왜 반대할까요.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한다고 해서 ‘다른 기업이랑 거래 끊어!’라고 하지야 않겠지만, ARM 최신 기술은 엔비디아한테만 먼저 준다던가 하는 일은 생길 수 있죠. 또 그동안 제품 개발을 위해 ARM과 긴밀하게 협의해 왔는데, ARM이 경쟁사 엔비디아에 넘어가면 껄끄럽지 않겠어요. 한마디로 ‘반도체 업계의 중립국 ARM이 어디론가 넘어가는 건 못 참아’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래서 소프트뱅크는 ARM의 기업공개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내년 3월까지 IPO를 하겠다는 계획이죠. 상장을 과연 어디에 하느냐-뉴욕이냐 런던이냐-를 두고는 아직까지 말이 많은데요(정확히는 손정의는 뉴욕에 하고 싶은데 영국 정부가 제발 런던에 하라고 읍소 중이어서 둘 다 할 수도). 그 와중에 손정의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러 한국에 온 겁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업계에선 ARM 지분을 일부 인수하라는 제안일 거라고 점치고 있죠. 어차피 삼성전자가 통째로 인수할 수 있을 회사는 아니니까요(누가 봐도 반독점 규제에 걸릴 가능성 100%). 점잖은 용어로는 ‘전략적 제휴’가 될 걸로 보인다는군요.

1일 김포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안철민 기자
막대한 현금(약 130조원)을 쌓아둔 삼성전자인데, 투자야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죠. 하지만 다들 탐낸다는 ARM의 미래에도 걸림돌이 있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집고 넘어갈게요. 만만찮은 경쟁자가 부상하고 있어서인데요. 그 이름은 바로 ‘RISC-Ⅴ(리스크 파이브)’.

ARM 설계도면을 이용하려면 라이선스비용을 내야 한다고 아까 말씀 드렸죠. 짐작하시겠지만 당연히 비쌉니다. 보통 백만 달러부터 시작한다는군요. 비싼 건 천만 달러까지. 그런데 RISC-Ⅴ는 무료입니다. 조금 싼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짜예요! 라이선스 비용도 없고, 로열티도 안 내도 되죠. 왜냐면 비영리 단체가 관리하는 ‘오픈소스’ 기반이거든요. 비유하자면 ‘반도체판 리눅스’랄까.

물론 RISC-Ⅴ는 아직은 개발 중인 단계라 ARM보다 완성도가 떨어져요. 이를 기반으로 한 제품도 나온 게 별로 없고요. 하지만 적잖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건 틀림 없죠. ARM보다도 더 낯선 이름이지만 RISC-Ⅴ 역시 기억해둘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by. 딥다이브

소비자에겐 조금 낯선 반도체 회사, ARM을 둘러싼 이야기를 요약해볼게요.

  • ARM은 모바일 영역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최근엔 인텔이 장악한 PC·서버 시장까지 공략 중이죠.
  • 서버시장을 노린 엔비디아가 M&A를 시도했지만 무산됐습니다. 경쟁업체들이 엔비디아가 가져가게 내버려둘 턱이 없죠.
  • 손정의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ARM 투자를 제안했을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일부 지분 투자가 유력하죠.
  • ARM의 대항마로 꼽히는 건 ‘RISC-V(리스크 파이브)’입니다. 아직은 작지만 이름을 기억해둘 만.


* 이 기사는 4일 아침에 발행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는 뉴스레터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매주 화, 금요일 오전 8시에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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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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