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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中 ‘탕핑족’ 佛 ‘희생당한 세대’… 세계 각국 확산되는 ‘N포세대’

입력 2021-11-30 03:00업데이트 2021-12-0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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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머니로그 청년들의 금융 분투기]〈1〉 청년들 취업난-빈부격차에 좌절
중국의 한 대학생이 캠퍼스 내에서 준비한 리포트를 주변에 뿌리고 누워 있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중국의 샤오밍(小明·20) 씨는 대학 졸업 후 30번 가까이 채용 면접을 봤지만 탈락했다. 취업을 포기한 그는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탕핑({平)족’이 됐다. ‘드러눕다’라는 뜻의 탕핑은 취업도 결혼도 하지 않고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며 지내는 중국 젊은층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샤오 씨는 한 달간 아르바이트로 3000위안(약 56만 원)을 벌어 이 돈으로 1년을 버틴다. 하루 한 끼만 먹고 1위안 정도만 쓴다. 가장 큰 돈을 쓰는 곳은 매달 내는 인터넷 요금 40위안이다. 그는 “힘들게 직장 다니는 친구들도 결국 빚내며 사는데 빚 없이 탕핑하는 내가 더 잘 사는 삶”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에선 2000년대생 ‘링링허우(零零後)’와 1990년대생 ‘주링허우(九零後)’를 중심으로 탕핑족이 늘고 있다.

‘N포세대’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각국의 청년들은 비관과 좌절, 분노를 일상으로 품고 지낸다. 좁아진 취업문, 자산 가격 급등에 따른 심리적 빈부격차 등이 만들어낸 모습이다. 미국의 문화평론가 앤 헬렌 피터슨 씨는 최근 저서에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는 부모처럼 살기 싫지만 부모만큼 되기도 어렵고,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라고 했다.

○ “미래도 희망도 없다”

일본에서 올해 유행하고 있는 ‘오야가차’를 나타낸 이미지. 부모를 뜻하는 ‘오야’에 장난감 뽑기 게임기를 지칭하는 ‘가차’가 함쳐서 ‘부모 봅기’란 의미를 갖고 있다. NHK 캡처
최근 일본에서 발표된 ‘2021년 신조어·유행어 대상’ 후보로 ‘오야가차(親ガチャ)’가 올랐다. 오야가차는 부모를 뜻하는 오야(親)와 장난감 뽑기 게임기를 가리키는 가차(ガチャ)를 합친 것으로, 직역하면 ‘부모 뽑기’다. 한국의 금수저, 흙수저처럼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계급이 대물림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학생 요시다 사유리 씨(23)는 “친구들이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오야가차에 실패했다’는 말로 표현한다”고 했다. 일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일본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가계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오야가차’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3년째 탕핑 생활을 하는 중국의 샤오쥔(小軍·32) 씨는 취직은 하지 않고 동영상을 공유 플랫폼에 올려 매달 1500위안(약 27만 원)을 번다. 이 중 하루 한두 끼 식비 등에 500위안을 쓰고 한 달에 1000위안을 모은다. 샤오 씨는 “20위안어치 돼지고기를 사서 최대한 얇게 썬 뒤 열흘 이상 먹는 게 식비를 아끼는 방법”이라고 했다.

중국의 탕핑족이 늘어난 건 개혁개방 이후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격차가 확대된 가운데 취업난과 주택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많아진 결과로 풀이된다. 올 초 중국 기업의 한 최고경영자(CEO)가 탕핑족 청년을 겨냥해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이 경쟁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꼬집었다가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 기성세대의 잔소리가 ‘노오력’(노력의 풍자어)이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요즘 미국에서는 매달 역대 최대 규모인 400만 명 이상이 자발적인 퇴직을 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가 이 같은 행렬에 대거 몸을 싣고 있다. 9월 현재 20∼34세 미국인 중 4분의 1 정도가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의 역대급 구인난을 감안하면 이들 대부분은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젊은 나이에 조기 은퇴해 경제적 독립을 꿈꾸는 ‘파이어족’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베이비붐 세대의 몰락을 목격한 밀레니얼 세대가 최근 팬데믹 위기까지 겪으면서 이런 경향은 더 짙어졌다.

○ 커지는 분노… 집값 급등, 취업난에 청년층 시위 잇달아

“집은 백만장자만을 위한 게 아니다.” 지난달 2일 이스라엘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의 로스차일드 광장에서는 치솟는 집값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 등 청년층이 시위의 주축이 됐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텔아비브의 방 4개짜리 아파트 평균 가격은 현재 약 96만 달러(약 11억5000만 원)로 10년 새 2배로 뛰었다. 이스라엘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대니얼 로즈힐 씨는 “집을 살 수 없다는 위기가 청년들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했다.

올해 3월 프랑스 파리 거리에서 대학생들이 ‘희생당한 세대’(Génération sacrifiée)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프랑스24 캡처
최근 프랑스의 청년들은 스스로를 ‘제네라시옹 사크리피에(G´en´eration sacrifi´ee·희생당한 세대)’라고 부른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정상적인 학업도, 취업도, 대인 관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됐다는 뜻이다. 지난해 대학원 석사를 마친 샤를리 리아드 씨(24)는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신규 채용을 하는 기업이 없다. 대학도 문을 닫아 박사 과정을 밟기도 힘들다”며 “취업도 진학도 포기하고 계획에 없던 창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의 5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8∼30세의 64%가 “나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희생당한 세대”라고 답했다. 또 83%는 “취업 불안, 경기 악화, 코로나19 지원금 지급 등으로 현재의 젊은층이 사회 전체의 부채를 짊어져야 한다”고 내다봤다.

취업난과 빈곤 문제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20, 30대가 늘자 ‘희생당한 세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반정부 시위에 나서는 프랑스 청년들도 생겼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지난해 3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진 가운데 20대의 소득 감소 폭은 다른 연령대보다 2배 가까이 컸다.

○ 세계 각국 정부, 등 돌린 청년 달래기

세계 각국 정부는 좌절하고 분노한 청년층을 달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과 프랑스에선 청년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섰다.


한국에서는 2030세대가 내년 3월 대선의 ‘스윙보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여야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청년 공약’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연 200만 원 ‘청년 기본소득’ 지급,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청년 도약 보장금’(저소득층 청년에게 최장 8개월간 월 50만 원) 지원 등을 내놨다.

내년 4월 대선을 치르는 프랑스에서는 재선을 노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현 시대를 20대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희생당한 세대’를 대상으로 강력한 지원책을 약속했다. 프랑스 정부는 ‘청년 1명당 솔루션 1개(1jeune 1solution)’라는 정책을 통해 3만 개 인턴, 10만 개 일자리를 만들 방침이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긴급 구호금 500유로(약 67만 원) 지급에도 나섰다.

중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 강화된 애국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주링허우와 링링허우가 공산당의 핵심 지지 기반이다. 이들이 돌아설 경우 정치적 파장이 크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탕핑족 확산에 대응해 강력한 창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베이징시는 해외 유학파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귀국할 경우 생활지원금 15만 위안(약 28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창업을 시도하면 창업지원금 명목으로 매달 5000위안(약 93만 원)을 지급한다.

일본 정부도 최근 중의원 의원선거가 끝난 뒤 청년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18세 이하 아동과 청소년 전체를 대상으로 10만 엔(약 100만 원)어치 현금과 쿠폰을 지급하기로 했다. 주민세를 내지 못하는 빈곤 가정의 대학생에게는 일시금으로 10만 엔을 지원할 방침이다.

특파원 종합·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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