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前 기준 규제에… 감자탕, 네이버선 팔고 마켓컬리선 못팔아

박성진 기자 , 화천=김하경 기자 입력 2021-06-08 03:00수정 2021-06-08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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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 없이 규제땜질]
창업-도약의 꿈 꺾는 땜질 규제
취수원 규제 벽에… 1년 만에 접은 사업 변지윤 씨는 강원 화천군 화천읍에서 베이커리 카페를 창업했지만 상수원 규제의 벽에 부딪혀 1년여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변 씨가 화천읍 사무실에서 지난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판매하다가 남은 빵 상자의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화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변지윤 씨(40)는 2018년 4월 강원 화천군 화천읍에서 베이커리 카페를 창업했다가 약 1년 만에 1500만 원의 적자만 남긴 채 사업을 접었다. 빵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판매하려 했지만 취수원 반경 4km 이내에선 제조업을 할 수 없다는 수도법 규제에 사업이 막혔다. 화천읍 전체가 이 규제에 걸린다. 4km 밖에서 빵 제조업을 하고 싶어도 공장을 지을 땅도 없고 빵을 실어 나를 도로도 없다.

취수원 규제는 지난 정부 때 한 번 완화됐다. 당시 수도법은 취수원에서 7km 이내에선 제조업을 금지했다. 2014년 9월 강원 홍천군에 사는 이희숙 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상수원 상류 지역에 한과 공장을 짓게 해달라고 하자 거리 규제는 ‘취수원 반경 4km’로 완화됐다.

이 같은 규제 완화는 대통령의 질타로 속도를 내긴 했지만 근거는 미약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1961년 상수원보호구역 제도를 도입할 때 거리 규제를 4km로 설정했지만 너무 옛날이라 정확한 이유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부식 단국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별다른 근거 없이 일률적으로 4km라는 기준을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과학적 근거 없이 규제를 만들었고 규제를 푸는 과정도 주먹구구로 이뤄진 셈이다.

○ 민원 나올 때마다 땜질에 급급

동아일보가 현 정부 출범 시점인 2017년 5월 이후 4년 동안 중소기업 옴부즈만에 접수된 1만8746건의 규제 관련 민원을 분석한 결과 규제개혁 건의가 수용된 것은 4014건(21.4%)에 그쳤다. 4455건(23.8%)은 필요한 규제이거나 이해관계 조정이 힘들다는 이유 등으로 수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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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국 씨(45)는 지난해 감자탕을 온라인으로 파는 사업에 나섰다. 즉석판매제조·가공업 등록을 마친 그는 유통 경로인 플랫폼을 물색했다. 네이버를 통한 판매는 가능한 반면 마켓컬리를 통해서는 불가능했다. 같은 온라인 판매여도 유통 방식에 따라 식품위생법 규제가 다르게 적용돼서다.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즉석판매제조·가공업자는 최종 소비자에게 제품을 직접 배달할 때만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상인들이 직접 물건을 올리는 오픈마켓(네이버, 쿠팡)에선 팔 수 있지만 마켓컬리처럼 판매를 대행하는 플랫폼에선 판매가 안 된다. 김 씨가 판매 대행 플랫폼을 통해 감자탕을 팔려면 식품위생법상 분리 독립된 공장과 포장실, 창고 등을 갖춘 뒤 식품제조·가공업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수억 원이 든다. 김 씨는 “1992년 냉동시설이 낙후되고 배송 시스템이 미비했을 때 만들어진 기준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산단에 들어오는 업체에만 규제 완화

‘수용성 절삭유’ 사용 사업장에 대한 입지 제한은 규제 땜질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수용성 절삭유는 금속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열을 줄이기 위해 물과 섞어 사용하는 일종의 윤활유다. 가격이 싼 반면 효율이 높아 금속 및 기계제조업 업체들이 많이 사용한다. 금속 및 기계제조 업체가 밀집해 있는 낙동강 하류 지역에 이 절삭유를 사용하는 업체들이 많다. 절삭유 수요가 많지만 환경부는 수질오염을 이유로 관련 사업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한했고, 그 결과 800여 개에 달하는 금속가공시설 업체가 사실상 무허가 상태로 사업을 이어왔다.

지난해 환경부가 존폐의 기로에 있던 업체들에 대해 규제를 일부 풀어주긴 했다. 수용성 절삭유를 전문업체가 위탁 처리하고 있어 환경오염 발생이 거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문제는 산업단지에 입주하는 업체에 한해 절삭유 사용을 허가해준 점이다. 환경부는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며 산단 내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영세업체들은 토지 매입비, 공장 건설비 등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 “완화된 규제가 또 다른 규제와 충돌”

전기오토바이를 파는 B사는 배출가스 인증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기환경보전법은 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오토바이의 특성을 인정해 전기자동차(이륜차)의 배출가스 인증을 생략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으려면 인증을 받아야 한다. 전기오토바이 판매대수 중 정부 지원금을 통한 판매 비율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업체들은 별수 없이 인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배출가스 인증서가 없으면 등록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환경부는 “해외 인증을 받은 수입 차량은 이미 최소한의 해외 기준을 통과했기 때문에 일종의 간소화 절차로서 인증이 생략된다”면서도 “보조금을 받으려면 국내 기준에 따라 인증을 다시 받아야만 한다”고 했다. 인증 생략이라는 규제 완화 취지를 인정해 놓고도 보조금 지급을 위해선 또다시 인증을 받아야 하는 모순에 기업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김주찬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의 주요 정책 추진 과정이 기존 규제와 충돌하는 등 제도적 모순이 많은데도 규제개혁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車 정비 위한 번호판 탈부착 60년째 불법… 이익단체 반대로 국회 문턱 못 넘고 표류
“대포차 차단” 1962년 번호판 규제… 간단한 범퍼 수리 때도 허가 필요
시간-비용 만만찮아 잘 안지켜… “삶의 질 기준 오래된 규제 풀어야”


서울 서초구에서 12년째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 중인 이원종 씨(65)는 사고 차량을 수리할 때마다 곤란을 겪는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상 정비업자가 정비를 위해 번호판을 탈·부착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차 소유주가 관할 구청 차량등록사업소에서 번호판 탈·부착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비업자도 차주의 권한을 위임받아 업무를 대행할 수 있지만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간단한 범퍼 수리를 맡긴 차주에게 원칙을 얘기했다간 짜증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규제는 자동차관리법 전신인 도로운송차량법이 1962년 제정됐을 때부터 있었다. ‘대포차 운행 억제’가 명분이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오랜 기간 별도의 허가를 받지 않고 번호판을 떼거나 붙이는 작업을 해왔다. 차주들이 허가를 받는 과정을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규제가 법 조문에는 있지만 현장에선 사문화한 셈이다. 이 씨는 “일일이 허가를 받으려면 3시간이면 거뜬히 끝낼 작업이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며 “이에 따른 비용은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번호판 탈·부착 문제가 공론화한 것은 2016년 7월 정비업자들이 제도 개선을 정부에 건의하면서다. 이후 2019년 11월 당시 자유한국당 함진규 전 의원이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비업자가 작업을 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번호판을 탈·부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었다. 여기에 국토교통부도 반대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시 국민 불편사항 개선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해 별도 의견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 심사 과정에서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업체를 회원사로 둔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국회 입법조사처에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재부착과 봉인 의무가 정비업자에게로 이전되면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비업자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논의는 답보 상태다. 정비업계 의견을 듣기 위해 국토부는 올해 2월 단 한 차례 회의를 열었을 뿐이다.

한국규제학회장인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오래된 규제일수록 규제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이 많아져 개혁이 어렵다”며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을 중심에 두고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진 psj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 화천=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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