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슈&뷰]韓전기산업 ‘꼬리 없는 오랑우탄’ 머무나

  • 동아일보

구자균 한국전기산업진흥회 회장
구자균 한국전기산업진흥회 회장
“전기를 어떻게 저장하는지 알기 전까지 우리는 꼬리 없는 오랑우탄에 불과하다.”

에디슨이 던진 이 말을 이해했던 사람은 당시 많지 않았다. 1880년대 후반 에디슨과 테슬라가 벌인, 이른바 ‘전류전쟁’이 테슬라가 주창한 ‘교류’의 승리로 막을 내린 이후 지금까지 교류 송전이 세계 표준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와 분산전원,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직류 전원이 급증하면서 전기산업의 진화는 결국 ‘에너지저장기술’을 통해 가능하다는 에디슨의 주장이 130년이 지난 지금에야 빛을 발하고 있다. 세계는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고 4차 산업혁명 물결 속에 대대적인 산업구조개편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전기산업은 “인류로 진화할 것인가, 꼬리 없는 오랑우탄에 머무를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에너지 전환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에너지원의 대표인 전력산업의 패러다임이 공급에서 수요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ESS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ESS는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전력이 필요한 시기에 공급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시스템을 말한다. 우리나라 ESS 산업은 2014년 한국전력공사가 사업을 시작한 이후 세계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크게 성장해 왔다. 하지만 2017년을 기점으로 발생한 화재 사고는 ESS 생태계에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업계는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제도개선, 안전장치 의무화와 충전율(SOC) 제한 등의 안전대책을 강구했다. 화재 사고와 그 처리 과정은 다른 국가가 경험해 보지 않은 길을 앞서가는 과정에서 겪은 미래의 소중한 자산으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전력품질 유지 및 전력계통 안정화를 위해 ESS의 활용이 증가하고 있으며, 보급 확대 및 시장 창출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과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하는 추세다. 세계 시장 선점을 위해 BYD, 테슬라, 소니와 같은 배터리 업체와 ABB, 보쉬 등 다국적 전력변환장치(PCS) 업체들의 시장 참여로 ESS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ESS 산업을 확대하고 있는 국가의 공통점은 법적 뒷받침, 보조금 및 연구기금 지원, 세금 감면 등의 정책지원에 의존하는 시장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 및 ESS 특례요금제도 일몰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신규사업 부진에 대해서는 연착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전략적 방안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민간 사업자 중심의 ESS 시장 생태계를 조성하고 글로벌 시장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출 활성화 비즈니스 전략도 시급하다.

에디슨의 말처럼 ESS에 전기산업 패러다임 ‘진화’의 성패가 달렸다. 우리는 진화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오늘의 위기를 내일을 위한 기회로 삼아 우리나라가 글로벌 ESS 시장의 맹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구자균 한국전기산업진흥회 회장
#韓전기산업#꼬리 없는 오랑우탄#구자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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