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1일 한진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한진칼에 대해 제한적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 지침) 본격화에 물꼬가 뜨였다.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해임, 사외이사 선임 등 보다 적극적인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는 제외됐으나 정관 변경 주주제안을 통해 국민연금이 경영참여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상징성을 보여주는 첫 사례를 남겼다.
◇ 한진칼 정관변경 제한적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10%룰’ 감안 대한한공은 제외
이번 결정은 한진그룹에 정면으로 칼을 겨누는 부담을 일단 피하면서 과도한 경영간섭과 연금 사회주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재계의 목소리도 일부분 반영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 및 위법 등의 문제에 대해선 언제라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정관에 ‘배임, 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이사는 ‘결원’으로 본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양호 회장의 사실상 해임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한진그룹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첫번째 대상이 된 데는 총수 일가의 땅콩회항, 물컵 투척 등 갑질 논란과 배임·횡령·탈세 등 불법·비리 혐의 재판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 제도를 도입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기관투자자는 연기금 1개, 보험사 2개, 자산운용사 28개, PEF운용사 28개, 증권사 2개, 투자자문사 2개, 서비스기관 1개, 은행 1개, 기타 1개 등 모두 78개다. 이 중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5%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303개(지난해 12월 기준)에 달하는 만큼, 한진칼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는 다른 기관투자자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송민경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 선임연구위원은 “대규모 연기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는 게 책임을 다하는 것인가에 관해 논의를 계속해서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방안이나 수위를 떠나서 주주활동을 하기로 정한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업에 장기적으로 회복이 어려워 보이는 문제나 위험이 나타난 경우, 국민연금의 이번 의사결정이 중요한 전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 자문기구 수탁자책임위 의견 뒤집어…대통령 발언 가이드라인 됐나?
그러나 자문기구인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가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과반의 반대 의견을 낸 것을 뒤집으면서 논란도 일고 있다. 앞서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의 주주권 행사 분과 위원 9명의 지난 23일 회의에서는 한진칼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에 반대가 5명으로 찬성 4명을 앞질렀다. 결국 같은날 오후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적극 행사’ 발언이 국민연금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이용해 재벌개혁이나 경영간섭에 이용하는 것은 연금사회주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가 확대되면 정치적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이번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결정이 선례로 작용해 경제계 전체로 확산되면 기업 활동을 더욱 위축시켜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편 국민연금은 ‘10%룰’(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시 단기매매차익 반환)에 걸리는 대한항공에 대해선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앞서 수탁자책임 전문위 위원 대다수(반대 7명, 찬성 2명)가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에 반대한 것도 10%룰을 감안한 측면이 컸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 12.45%를 보유하고 있다. 한진칼 지분은 7.3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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