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해진 ‘재벌 저격수’?… 재계 기대반 우려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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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김상조 ‘재벌개혁 투톱’ 부상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그래픽 왼쪽)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21일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문재인 정부의 첫 대통령정책실장에 임명되면서 새 정부 경제정책의 주요 과제인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정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장 실장과 20여 년간 시민사회 진영에서 활동해 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학계 안팎에서 ‘재벌 개혁 투톱’으로 불리며 관련 분야에 집중해 왔다.

장 실장은 “재벌 개혁에 두들겨 팬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경제민주화가) 단순히 법인세만 올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급진적인 모습과 거리를 뒀다. 이들이 재벌 개혁과 경제성장 동력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느냐에 따라 새 정부 경제팀 전체의 성패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 ‘재벌 저격수’로 동고동락 20년

장 실장과 김 후보자의 인연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 실장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대기업의 불합리한 경영권 승계 문제 등을 이미 지적해 왔다.

1994년 한성대 교수로 학계에 입문한 김 후보자도 활발히 활동했다.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들에 제안한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을 설득하고자 기업과 시민단체들을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했다. 이를 눈여겨본 장 실장은 김 후보자에게 참여연대 합류를 권유했고 둘의 의기투합이 본격화됐다. 재벌의 전근대적 지배구조를 끊임없이 꼬집으며 강의실에서 벗어난 ‘현실 참여형 학자’로 활동에 나섰다.

소액주주로 삼성 등 대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지금도 회자된다. 장 실장은 앞서 1998년 3월 삼성전자 주총에서 “삼성전자가 삼성자동차를 편법 지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주총장을 뒤집어 놓았다. 경영진과 장 교수가 설전을 벌이며 주총은 13시간 17분 동안 계속됐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주총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2006년에는 장 실장이 ‘장하성 펀드’로 불린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 자문역에 나서면서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그해 8월 대한화섬 지분 5.15%를 확보하며 증권가에 파란을 일으켰고 2012년 3월에는 남양유업 주총에서 배당금 정책을 두고 표결까지 가는 대결을 벌였다.

○ 최근엔 ‘온건 선회’ 비판·기대 모두 쏠려

학계에서 급진적 행보를 보여 온 두 사람에게는 사회주의자, 외국 자본 대변인 같은 극단적인 평가가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재계가 보기에는 주총장까지 들어와 경영진을 방해하는 ‘눈엣가시’였고, 좌파 진영의 눈에도 두 사람의 재벌 개혁 방식은 생소했다. 특히 장 실장의 장하성 펀드 운용에는 “저평가된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에 참견하는 방식이 외국 헤지펀드와 다를 바 없다”는 날 선 비판이 좌우 진영 모두에서 나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두 사람의 개혁 방식에도 변화 조짐이 보인다는 평가도 심심찮게 나온다. 장 실장은 2006년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투명성이 1997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2012년에는 안철수 대선 후보의 ‘진심캠프’ 국민정책 본부장을 맡으면서 “저승사자 말고 재벌의 동반자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20년 전의 장하성이 아니다”라고 발언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재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장 실장 임명 소식이 알려진 뒤 재계는 “특정 기업이 이렇다 저렇다 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입을 다물었지만 긴장하는 기색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 개혁 드라이브가 예상보다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경제팀을 이끌 두 사람이 경제민주화와 성장을 균형 있게 추진할 것을 주문한다.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 등 한국 경제의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려면 재벌개혁에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장 실장과 김 후보자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경쟁력을 모두 높이는 방향으로 공정 경쟁을 유도한다면 새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에도 부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천호성 thousand@donga.com / 서동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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