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액공제로 정부가 깎아주는 근로소득세가 전체 근로소득세 세수(稅收)보다 13조 원 더 많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선 후보들이 구체적인 공식 세금 공약을 제대로 내놓지 않고 있는 가운데 기형적인 공제 및 감면에 어떤 식으로든 손을 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가 실현돼야 앞으로 크게 늘어날 복지정책에 따른 재원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전체 급여의 4분의 1은 사실상 면세 구간
23일 박기백·전병욱 서울시립대 교수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뢰로 작성한 ‘소득불평등 개선을 위한 조세 및 재정정책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가 근로소득세로 부담한 세금(2014년 귀속분·결정세액 기준)은 24조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근로소득세에서 소득공제로 깎아준 세금은 26조4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산출됐다. 세액공제액은 11조3000억 원이었다. 결과적으로 각종 공제로 걷지 않은 세금이 37조7000억 원에 달하는 셈이다. 박 교수는 “산술적으로 공제가 없었다면 38조 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박근혜 정부 들어 크게 증가했다. 2012년 근로소득세 면세자는 전체 근로소득자의 33.2%였지만 2014년 48.1%, 2015년 46.8%로 크게 늘었다. 박근혜 정부가 소득공제 일부를 세액공제로 바꾸고, 이 과정에서 납세자들이 반발해 연말정산 파동이 벌어지자 부랴부랴 공제를 늘렸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근로소득자에게 준 전체 금액에서 소득공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26.4%였다. 급여의 4분의 1이 사실상 면세구간이 된 셈이다.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소득을 얻기 위해 근로자가 쓴 비용에 대해선 일부 공제해주는 것은 맞지만 목적에 비해 너무 과하게 운용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제, 어떤 속도로 줄여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특정 분야 증세만으론 복지재원 조달 불가능”
왜곡된 일부 세법을 바로잡고 갈수록 늘어나는 복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세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은 뚜렷한 증세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른바 ‘표가 안 된다’는 계산이 앞서면서 유력 후보들의 대기업 법인세 증세 주장만 나오고 있다. 유력 후보들이 내놓은 대선 공약들을 이행하는 데 연 20조∼40조 원이 들어갈 것으로 분석되는 상황에서 대기업 법인세 증세만으로 이를 충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뜩이나 법인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법인세 인상만 단행한다면 지속 가능한 나라살림 운용에 문제가 나타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수는 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8.6%)의 절반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의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3.2%)은 비교 가능한 32개국 평균(2.9%)보다 높다.
박형수 조세재정연구원 원장은 “현재 대선 정국에서 논의되는 공약들에 필요한 증세 규모는 매우 크기 때문에 특정한 세목, 계층을 대상으로 한 증세만 갖고는 재원 조달이 불가능하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위해 포괄적인 세제 개편이 필요하고 누가 얼마만큼의 세금을 부담하는지에 대해 빠르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돼 모든 국민이 다 같이 세금을 더 낸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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