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결혼 잔소리에 스트레스 받느니… 학원-카페로 피신한 자녀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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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들이 설 연휴 첫날인 27일 서울 종로구 파고다어학원 자습실에 아침 일찍부터 나와 공부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취업준비생들이 설 연휴 첫날인 27일 서울 종로구 파고다어학원 자습실에 아침 일찍부터 나와 공부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비상식량 받아 가세요.”

 27일 서울 종로구 파고다어학원. 설 연휴 첫날이라 도심이 텅텅 비었지만 학원 자습실은 공부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모인 취업준비생들로 꽉 들어찼다. 이 학원은 연휴 내내 ‘명절 대피소’라는 이름으로 30석 규모의 자습실을 운영했다. 이 기간에는 학원에 등록한 수강생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허기를 달랠 수 있도록 ‘비상식량’이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은 과자와 빵도 무료로 제공했다.

 명절 대피소의 책상에는 토익 모의시험 교재를 비롯해 회계와 세무실무 등 취업 준비 서적이 잔뜩 쌓여 있었다. 대학생 임모 씨(26)는 “설 연휴 내내 2월에 있을 토익 시험에 대비하려고 아침 일찍 왔다”며 “명절이라는 의미보다 남들 쉴 때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취업 부담과 결혼, 직장에 대한 친척들의 잔소리를 피해 학원이나 스터디카페 등으로 피신하는 청춘이 늘고 있다. 최악의 취업난을 뚫기 위해 혼자 공부를 하거나 스터디(공부) 모임을 하며 설을 보내려는 청년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재취업을 준비하거나 직장 승진시험 때문에 명절에 쉬지 못하는 ‘샐리던트’(샐러리맨+스튜던트·공부하는 직장인)들도 눈에 띄었다. 직장인 박모 씨(37)는 승진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기 위해 명절 대피소를 찾았다고 했다. 박 씨는 “자기 계발을 해야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설 연휴 내내 자습실이 문을 닫을 때까지 공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휴 마지막 날인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스터디카페도 취업준비생들로 붐볐다. 지난해 6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새 직장을 찾고 있는 이모 씨(29)는 이날 오전부터 자기소개서 스터디 모임을 위해 카페를 찾았다. 이 씨는 자기소개서 외에도 시사상식 테스트, 프레젠테이션 등을 준비하는 다른 모임도 하고 있다. 이 씨는 “친척들이 집에 와서 눈치 보이고 불편해 피신해 왔다”며 “아무런 소속 집단이 없지만 스터디 구성원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은 편하다”고 털어놨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청년실업#잔소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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