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전례가 없어 안된다? 백성에 유리한 새 전례 만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2일 03시 00분


영-정조를 통해 본 리더십

 서울 중구 남대문로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 외벽의 ‘미디어 캔버스’는 탄생 당시 엄청난 반대에 부닥쳤다. 초대형 건물 전면을 활용해 아트 워크를 시행한 전례가 없으니 기술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지적이 쏟아졌다. 이 프로젝트는 진통 끝에 겨우겨우 완성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그 제안에 반대했던 사람들조차 미디어 캔버스를 ‘세계의 유명 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칭송한다.

 사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아이템을 구상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분통 터지고 끔찍한 상황은 “경험이 있느냐?”고 묻는다거나, “전례가 없어서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올 때다. 새로운 일이나 아이템은 그야말로 처음 하는 시도이기에 어렵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취지 따윈 팽개쳐 버리고 근거만을 내세워 제안을 거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조선은 예법과 전통을 대단히 중시한 나라였다. 그러니 ‘전례가 없다’는 것처럼 무서운 말이 없었지만 이것이 복지부동이나 책임 회피를 위해 사용되진 않았다. 전례를 따지는 것의 제일 큰 용도는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왕이 능을 크게 지으려 한다거나, 총애하는 신하에게 과도한 권력을 몰아주려고 하거나 인기를 위한 정책을 시행하려고 할 때, 신하들이 이를 방지하기 위해 거론하는 것이 “전례가 없다”였다. 그뿐만 아니라 권력가가 중국 사신의 부당한 청탁을 거절하는 방법도 “나는 정말 들어주고 싶은데 전례가 없다”였다.

 조선시대에도 백성들이 큰 고통을 받거나 법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경우 전례에 구애받지 않고 전례에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전례 위의 원칙’이 있었다. 이것이 조선시대 전례의 진짜 원칙이었다.

 개혁군주라고 불리는 영조와 정조는 이런 전례 사용의 원칙에 더더욱 철저했다. 전례를 악용하는 사례는 철저히 색출해 금지하고 새로운 전례를 만들어내는 데 더 적극적이었다. 18세기 관리들은 자기들이 편한 대로 ‘행정관행’ ‘조세관행’ ‘행사관행’을 만들었고 그것을 기록해놓은 뒤 전례와 관행을 내세우며 수탈을 일삼았다. 한마디로 전례를 악용하기 일쑤였다. 그러자 영조는 모든 관청에 있는 ‘전례등록(前例謄錄)’, 즉 관청별로 시행되고 있던 관행 기록을 정리한 책을 모두 태워버리게 했다.

 정조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과거에 여러 가지 전례가 있는데 그중에서 백성에게 제일 좋은 것을 사용하고, 필요하면 새 법을 빨리 제정해 그것을 새로운 전례로 만들라고 명했다. 1789년(정조 13년)에 사도세자의 무덤을 이장해야 했다. 조선에서는 이런 왕실 행사에 백성들을 동원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정조는 이러한 관행이 전례를 핑계로 백성들을 괴롭히는 처사라며 금지했다. 그 대신 임금을 지불하고 고용하라고 명령했다.

 많은 사람이 전례와 경력을 따지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사정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례를 사용하는 이유와 전례의 목적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전례가 없다’는 말이 편하고 안전하고,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이제 다시 한 번 전례의 사용 원칙을 재점검해볼 때가 됐다. 전례를 올바로 사용하고, 전례에 의지하기보다는 이를 창조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노혜경 호서대 인문융합대 교수 kroh68@hotmail.com
정리=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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