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푸른하늘에 귀농? 딱 실패할 타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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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헌 연암대 귀농지원센터 교수
“나홀로 농업개혁” 독립운동 스타일, “누군가 도와주겠지” 막가파도 위험
10년간 귀농인 8000여명 길러내 이젠 안정된 수익구조 창출위해 도전

채상헌 연암대 귀농지원센터 교수는 10여 년 동안 귀농인 8000여 명을 가르쳐 ‘귀농, 귀촌인의 아버지’로 불린다. 사진은 채 교수가 귀농지원센터 채소 재배 온실에서 육묘판을 옮기고 있는 모습. LG그룹 제공
채상헌 연암대 귀농지원센터 교수는 10여 년 동안 귀농인 8000여 명을 가르쳐 ‘귀농, 귀촌인의 아버지’로 불린다. 사진은 채 교수가 귀농지원센터 채소 재배 온실에서 육묘판을 옮기고 있는 모습. LG그룹 제공
 ‘귀농, 귀촌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연암대 귀농지원센터 채상헌 교수(52)도 사실 ‘귀농 실패자’였다. 그는 1987년부터 LG화학 연구소에서 10여 년 동안 농약과 제초제를 개발하는 연구원으로 일하다 문득 ‘연구복을 벗고 농민들과 함께 농촌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귀농했다. 고향인 충남 금산에 1만2560m²(약 3800평) 규모로 조경수 묘목을 심고 가꾸길 2년. 채 교수는 이 기간을 “죽기 살기로 매달리다 정말 힘들어 죽을 뻔했던 시기”라고 기억한다.

 채 교수는 “귀농에 실패하는 사람 대부분 ‘나 홀로 농업을 바꿔 보겠다’는 독립운동 스타일, ‘무작정 가면 누군가 도와주겠지’라며 대책 없이 내려오는 ‘막가파’ 스타일 둘 중 하나”라며 “나 역시 귀농에 실패했지만 이 과정에서 귀농이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 마련돼야 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일본 도쿄농공대 농학부 등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한 채 교수는 한국에 돌아온 뒤 2006년부터 연암대 귀농지원센터 초대 센터장을 맡았다. 귀농 실패 경험과 연구 경험 등을 살려 진짜 귀농인을 길러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채 교수는 “귀농지원센터 지원자 중 25%가 직장을 다니다 막연히 맑은 물, 푸른 하늘을 보고 싶어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귀농을 해서는 안 될 사람을 가려내 포기하게 하는 것도 귀농지원센터의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채 교수의 손을 거친 제자만 8000여 명. 채 교수의 스마트폰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충남 OOO’처럼 귀농 지역과 이름이 함께 저장돼 있다. 제자들이 점점 늘다 보니 전화번호부에는 전국 대부분 지역이 빠짐없이 적혀 있을 정도다.

 지난달 29일 연암대 귀농지원센터에서 개소 1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가 열렸다. 채 교수의 수업을 듣고 귀농에 성공한 1기 수료생 15명이 학교를 찾아 귀농을 계획하는 후배들과 만나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나누기 위해 열린 자리였다. 1기생들은 이날 귀농지원센터 수업을 들으며 적었던 귀농 포부, 미래 자신의 모습을 적어 넣은 타임캡슐을 10년 만에 열었다.

 ‘참농부가 되겠다’ ‘10년 뒤 귀농에 성공해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오겠다’ 등 1기생들의 다양한 꿈이 담긴 타임캡슐 속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농촌 세상을 만들자’고 적어 넣은 채 교수의 바람도 들어 있었다. 1기생 김한종 나무지기 농장 대표는 “책상 위에서 책과 자료로 농업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닌 농촌 생활 곳곳을 엿볼 수 있는 현장 중심의 교육 덕분에 귀농에 큰 도움이 됐다”며 웃었다.

 채 교수는 2010년 9월부터 ‘새싹 농부 장학금’ 제도도 운영 중이다. 채 교수가 직접 만나는 사람마다 농업의 중요성과 귀농인 양성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1만 원씩 기부금을 받은 돈으로 7년 동안 총 2600만 원을 모았다. 채 교수도 강사료, 인세 등을 꾸준히 보탰다. 새싹 농부 장학금은 지금까지 농대생 41명에게 지급됐다.

 귀농지원센터를 거친 졸업생 중에는 귀농에 성공한 뒤 후계 양성을 위해 자식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채 교수는 “최근 귀농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귀농지원센터처럼 체계적 교육기관이 늘어난 것은 반길 만한 일이지만 아직 국내 농촌 현실은 나뭇가지에 걸린 풍선처럼 위태롭다”며 “앞으로 10년은 단순한 귀농 지원을 넘어 농촌에 안정된 수익구조를 만들어 지원하는 역할까지 맡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강조했다.

서동일기자 dong@donga.com
#귀농#귀촌인#채상헌 교수#새싹 농부 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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