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人]밸런스인더스트리, 폐휴지의 아름다운 변신… RPM수출 성공신화 창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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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175만 명 종사자들 생명줄 역할하며 산업화 이뤄
㈜밸런스인더스트리, 공익 먼저 생각하는 경영으로 사회공헌

“단돈 몇천 원이지만 손수 벌어 손자 과자값도 내 손으로 줘.”

고순희 할머니(75·서울 도봉구)는 고물과 20년 세월을 살았다. 매일 작은 손수레를 끌고 골목 구석을 누비며 고물을 한가득 모아도 한 달에 손에 쥐는 금액은 고작 10만 원 남짓. 반찬값이나 생필품, 손자 과자값으로 쓰거나 병원비까지 낼 수 있는 귀한 돈이다. 자원재활용연대에 따르면 폐지 줍는 노인은 전국에 약 175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책이며 신문 등 파지 값은 kg당 100원 남짓. 그나마 하루에 몇 천원 벌기도 빠듯하다. 그런데 폐지 수출로 사회 극빈자를 돕고, 나아가 저소득층 일자리 창출과 국부 창출에도 이바지하는 기업인이 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밸런스인더스트리(www.balanceind.com)의 엄백용 대표가 그 주인공. 엄 대표는 바쁜 일정 탓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밝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았다. 그는 100% 재활용지로 만든 명함부터 건넸다. 엄 대표를 비롯해 이 회사 전 직원의 명함은 재활용지로 제작됐다. 겸손한 태도와 달리 재활용 종사자들의 어려움을 대변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상사맨 인생’ 접고 ‘재활용수출 인생’ 시작

엄 대표는 재활용자원을 아시아 전역으로 수출하며 굴지의 기업을 일궈낸 의지의 사업가다. 밸런스인더스트리는 폐지 등 재활용자원을 회수해 해외에 실어 나르며 한 해 4000억 원의 국부를 창출하는 효자기업이다. 국제적인 정식 명칭으로는 ‘R.P.M.(Recycled Pulps Materials·재생펄프원료)으로 불리는, 소위 ‘폐휴지’를 수거한 후 분류해 압축한 제품을 수출하는 일을 주로 한다.

밸런스인더스트리는 국내(서울 인천 광양 부산)와 일본(도쿄 후쿠오카 오사카)에 법인을 두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R.P.M. 물량을 수출하는 기업으로 아시아 재활용 산업계에서는 3위 안에 손꼽힌다. 이 회사는 재활용자원 수출을 통해 환경보호와 국부 창출, 저소득 소외계층 고용 창출 등 다방면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다.

엄 대표는 서강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공군 학사장교로 예편해 1980년대 우리나라 유일의 국영 종합상사였던 ㈜고려무역에 취직했다. 당시만 해도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아 신변 보장을 안심할 수 없었던 중국을 단독 방문해 중국 원유기업과 직교역 수출입 계약을 최초로 성사시키는 활약을 하기도 했다. 잘나가는 석유화학 딜러였던 그는 2005년 겨울의 어느 날 ‘상사맨 인생’을 접고 ‘재활용수출 인생’을 시작했다. 폐지를 줍는 어느 노부부의 고단한 삶을 목격한 것이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꿨다. 그는 골목길을 누비며 수집해온 종이박스를 손수레 위에 차곡차곡 쌓고 있는 노부부에게 “kg당 얼마를 받으세요?”라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러자 할아버지로부터 “30원인데, 고물상에서 안받아주면 내일 밥도 못 먹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충격을 받았다. 어림짐작으로 계산을 해보니 하루 종일 일한 노동의 대가가 고작 6000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극빈자 착취 구조를 직접 목격한 그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즉시 각국의 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당시 체감 물가 수준이 10배나 낮았던 중국의 경우 파지 가격이 kg당 60원이 넘었다. 그는 멀리 내다보고 모종의 결심을 했다. 폐지를 수거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회사도 공정한 기업 활동을 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해답을 ‘재활용지 수출’에서 찾았다.

사익보다 공익… ‘폐지=쓰레기’ 편견 없어져야


재활용 종이 매입 가격은 수출 단가에 따라 국내 가격이 정해진다. 2006년 엄 대표가 본격적인 재활용지 수출에 나서면서 kg당 30원 하던 단가는 6개월 만에 100원까지 올라갔다. 자연히 그가 거래하는 국내 공급자들에게 제대로 된 노동 대가가 돌아갔다.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니 전체 업계가 따라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2013년에는 사업시작 7년 만에 ‘3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며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재활용 종이의 해외 수출이 늘어나면 근로의욕이 있는 저소득계층에게 회수량 증대소득과 가격 인상에 따른 소득 인상 효과로 인해 연간 약 8000억 원의 소득 재분배가 생겨납니다. 재활용 종이 매입 단가가 올라가면 그만큼의 돈이 종이 줍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겁니다.”

재활용자원 회수로 소위 ‘초대박’을 터뜨린 엄 대표는 재활용이라고 하면, 일단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인식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토로했다. “폐지라는 말 속에 내재된 ‘폐기물, 쓰레기’라는 부정적 편견을 마주하게 될 때, 많이 속상합니다. 자원 재활용은 우리의 후손들을 위한 지구 보존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는 일입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재활용기업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공익을 추구하면서도 이윤까지 내야 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렵고, 힘든 점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자원 회수 산업이 노인들의 생계소득과 직결되는, 사회 극빈자의 주요 소득 창출 산업이라는 인식이 바로 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활용산업에 대한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 ‘폐기물’의 의미가 강하게 담긴 ‘폐지’ 또는 ‘고지’라는 용어 대신 ‘재생펄프원료’의 약자인 R.P.M.으로 바꿔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엄 대표는 이윤보다 사람, 사익보다 공익을 늘 경영의 첫머리에 둔다. 그는 재활용 종이를 친환경을 넘어 경제적 파급효과도 상당히 큰 자원이라고 소개했다.

“매년 100만 t의 폐지가 회수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680만 m²의 폐기물 매립지 감소로 폐기물 처리와 소각비용으로 들어가는 약 2600억 원의 공공비용이 줄게 됩니다. 또한 외국산 폐지 수입대체효과와 국내 제지사의 생산 증대가 가능해지고, 뿐만아니라 재생산된 상품의 가치(2000억 원)를 더하면 약 4600억 원의 국익이 발생하는 셈이죠.”

국내외 정기 세미나 개최… ‘선의의 경쟁’ 필요


엄 대표는 버려지는 자원에서 황금을 캐는 R.P.M. 산업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장기적인 로드맵을 짜놓고 있다. 2020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R.P.M.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목표가 그것이다. 목표 달성과 재활용산업 인식 개선의 일환으로 (사)한국재활용지수출입협회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으로도 활동하며, 매년 상·하반기에 국내외에서 정기적인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일본 오사카 상공회의소에서 ‘R.P.M.수출 활성화, 사회 공헌과 국제 시장 분석’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성황리에 마쳤다. 일본 업계에서는 재활용자원산업의 선구적인 비전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고지(古紙)수출위원회의 정식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엄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산업발전과 더불어 더 큰 국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마음가짐과 태도가 명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은 오직 그 기업행위들의 결과가 ‘사회의 의미 있는 발전’에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최근에는 연세대와의 산학협력을 통해 세계 최초 음향·진동기반 압축재활용지 베일의 수분함량측정기법 연구개발을 완료해 특허를 취득했다. 이것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R.P.M. 평가가 가능해 가수(加水)행위(폐지에 물을 뿌리거나 물에 적시는 행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이다. 엄 대표는 “아시아권을 넘어 앞으로 유럽과 미주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나가 글로벌 재활용 수출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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