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회원국끼린 중간재 원산지를 자국산 인정… 한국수출 타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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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빠진 TPP 타결 이후]추가 가입 고민 깊은 정부

세계 최대의 경제통합체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타결되면서 한국 정부의 움직임도 급해지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TPP 참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TPP 대책단을 중심으로 협정문의 구체적인 내용과 함의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협정문 조항 중 한국에 불리한 조항이 적지 않은 탓에 TPP 참여를 추진하는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부담 조항 수두룩

6일 산업부와 미국무역대표부(USTR)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TPP 협정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원산지 누적 기준 △국영기업 우대 금지 △수산 보조금 금지 △부당 규제 철회 요청권 △의약품 자료 보존기간 연장 등의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12개 TPP 회원국이 아닌 한국에 당장 구속력을 발휘하지는 않지만 한국이 TPP에 참여할 경우 국내 산업을 위협하는 조항들이다.

TPP 참여국들이 제품의 ‘원산지 누적 기준’에 대해 합의한 것은 가장 위협적인 조항이다. 원산지 누적 기준이란 TPP 12개 회원국이 서로가 생산한 중간재를 사용해 최종 제품을 만들 경우 중간재의 원산지를 자국산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자칫 TPP 회원국들끼리 역내 수출을 독식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영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상계관세 조치 등 무역 보복을 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한국의 TPP 가입 시 불리하게 작용할 대표적 규정이다. TPP 협정문은 국영기업을 ‘정부의 직간접적 소유 또는 영향을 받는 기업’으로 규정했다. 이 경우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정부가 지분을 소유한 30개 공기업은 해당 조항의 저촉을 받을 수 있다. 적용 분야를 금융까지 확대하면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한 부실 기업 지원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수산 보조금에 대한 포괄적 금지(Catch All) 조항도 한국에 불리하다. TPP 협정문은 불법 및 과잉 어획에 대한 어업 보조금을 금지하고 있다. 어족 자원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농어업용 석유류에 대한 비과세 혜택의 일몰 시기가 도래할 때마다 “농어업인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를 연장해왔다. TPP에 가입할 경우 이런 면세유 지원이 원천적으로 금지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런 조항들은 한국 산업에 극도로 불리해 설령 TPP 추가 가입에 성공하더라도 국내 비준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철저한 준비만이 살길”

하지만 대다수 국내 통상전문가는 정부가 이미 참여 의지를 천명한 만큼 TPP 참여에 따른 실익을 더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국익 극대화를 위해 서둘러 추진하되 국내 갈등을 최소화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장은 “각국에서 비준을 거쳐 제대로 발효되려면 2년 정도 시간이 걸릴 텐데 그걸 지켜보고 있다가 나중에 준비해서 들어가면 늦는다”며 “지금부터 협상을 준비한다면 2년 안에 협상을 끝내고 12개 회원국과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속한 참여선언을 통해 TPP를 사실상 ‘12+1 협정’으로 만들자는 구상이다.

문제는 향후 협상 과정에서 농수산물 시장 개방 확대 등 ‘값비싼 참가비’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결국 참가비 지불의 정당성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국민을 설득해 나갈지가 관건이다. 일단 정부는 극도로 민감한 쌀 시장 개방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최 부총리는 이날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TPP에 참여해도 쌀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해 계속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쌀은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과 FTA를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양허 대상에서 제외해 왔다”고 강조했다.

쌀 시장을 지키기 위해선 서비스업이나 공산품 등 다른 분야에서의 대폭 양보가 불가피하다. ‘최고 수준의 자유화’란 TPP의 명분 앞에서 일본, 뉴질랜드마저 자국 농산물 시장을 지키는 데 실패한 상황에서 과연 한국 정부가 과거 다른 통상협상 때처럼 이를 고수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TPP전략포럼 의장)는 “한국이 추가 가입을 할 때 농림축산 분야가 정치적으로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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