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롯데백화점 본점 9층 할인 행사장을 찾은 고객들이 의류와 신발 등을 고르고 있다. 백화점들에 따르면 소비 회복의 가늠자로 여겨지는 의류 매출이 최근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7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롯데백화점 본점 9층의 의류·구두 할인 행사장. 이곳은 옷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여 통로를 지나가기 힘들 정도였다.
아내와 함께 백화점을 찾은 박관희 씨(58)는 골프 의류 두 벌과 부인의 봄 재킷 한 벌을 샀다고 했다. 2년 만에 골프 의류를 새로 샀다는 그는 “지난해에는 세월호 사고도 있고 해서 어디를 놀러가고 쇼핑을 한다는 것 자체가 꺼려졌었다”며 “올해는 할인 행사도 많아서 쇼핑을 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소비침체로 얼어붙었던 현장 경기의 분위기가 바뀌는 모양새다. 한국은행은 15일 최근 경기 흐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기준금리를 동결한 바 있다.
○ “뭘 해도 안 되던 옷이 팔린다”
“꿈쩍 않던 소비자들의 마음이 이제 열리는 느낌입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지난달 중순부터 매장의 공기가 달라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경기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패션상품의 매출 호조세가 최근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등 유통업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올해 1분기(1∼3월) 매출은 전년 대비 0.3% 상승에 그쳤다. 하지만 4월에는 4.8%, 5월(1∼14일)에는 8.0%가 올랐다. 특히 이달 1∼14일 남성복과 골프 의류·용품의 매출 증가율은 전년 대비 각각 12.1%, 26.5%로 눈에 확 띌 정도다. 현대백화점 역시 1분기 남성복 매출이 전년 대비 1.3% 줄었지만 이달 1∼14일에는 6.3%나 뛰었다.
신세계백화점에서도 의류와 골프 관련 매출이 오르는 추세다. 신세계의 1분기 골프 용품 및 의류 매출은 지난해 대비 4.8% 줄었지만 지난달에는 10.8% 늘었다. 이달 1∼14일에는 매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18.9%로 나타나 성장세가 도드라졌다.
소비자들이 가장 마지막에 지갑을 연다는 의류 시장에 온기가 돌면서 제일모직과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패션업체의 실적도 개선되는 추세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신사복인 ‘로가디스 스마트 슈트’는 4월 이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팔렸다”고 말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1분기 매출은 지난해보다 17.9%, 영업이익은 65% 증가했다.
○ 주택경기 호조로 가구·가전도 인기
가구와 가전제품 등 이사 관련 상품들은 올 초부터 뚜렷한 회복세로 돌아섰다. 부동산 경기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한샘의 1분기 매출은 3692억 원으로 분기 매출로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2% 늘어난 수치다. 한샘은 4월 매출도 지난해보다 20%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현대리바트의 1분기 매출도 지난해보다 22% 신장했다. 4월 매출은 25.9% 성장했다.
롯데하이마트에서는 냉장고와 세탁기 등 백색가전의 4월 매출이 지난해보다 15% 늘었다. 5월 들어서는 이른 무더위까지 나타나며 매출 성장률이 약 20%로 더 가팔라졌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세월호 사고로 인한 기저효과 때문에 올해 4, 5월 소비 경기가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경기 변동에 민감한 상품의 매출 호조세는 세월호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긍정적인 신호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현대홈쇼핑의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세월호 사고의 영향을 덜 받은 홈쇼핑에서도 이달 의류 매출이 지난해보다 29%나 늘었다”며 “경기가 살아날 때에는 식품, 생활용품보다 패션상품이 더 인기가 높다는 점에서 최근의 의류 판매 호조가 좋은 징조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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