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포럼으로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 경쟁력 순위는 언론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2007년 11위였던 한국은 지난해 26위까지 떨어졌다. 하락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히는 분야가 바로 금융이다. 한국의 금융 경쟁력은 지난해 80위로 아프리카의 말라위(79위), 우간다(81위)와 함께 하위권을 형성했다.
외형을 보면 한국이 이들과 비교될 수준은 아니다.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세계 12위, 펀드 규모는 13위, 보험시장은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8위다. 그런데 왜 종합적인 금융 경쟁력은 이토록 낮게 평가받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WEF의 순위 산정 방식을 알아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평가했는지도 모른 채 낙제 점수라며 호들갑 떨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WEF 순위는 각종 통계와 설문조사를 합산, 산출하지만 유독 금융 분야만 100% 설문조사로 순위를 매긴다. 결과적으로 금융 분야 순위는 해당 국가 기업인들의 자국 금융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 가깝다. 우간다와 한국의 경쟁력이라 직접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뜻이다. 똑같은 수준의 서비스라도 기대치가 높으면 만족도가 떨어지고, 기대치가 낮으면 상대적으로 만족도는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 기업인들이 한국 금융에 대해 왜 이처럼 낮은 평가를 내렸는가’를 분석하는 과정은 우리 금융업 종사자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설문항목 중 최하위 점수를 받은 항목이 있다. ‘대출의 용이성’(118위), ‘벤처자본의 이용 가능성’(115위)이다. 금융회사의 높은 문턱에 대한 기업인들의 불만이 격하게 느껴진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교수는 금융을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에 비유했다. 경제가 잘 순환되려면 금융에서 병목현상이 없어야 한다. 새로운 경제 활력 찾기가 최우선 과제인 지금, 구석구석 돈이 제대로 흐르는지 살펴보고 막힘없이 흐를 수 있는 금융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한다.
먼저 대기업 위주, 그리고 담보대출 중심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소기업과 금융 소외계층도 금융회사를 이용할 기회가 더 늘어야 한다. 또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해 자금수요가 가장 많고도 절박한 혁신기업과 벤처기업에 모험자본을 공급해주는 길을 넓혀야 한다.
우리는 지금 ‘글로벌 금융시장의 축이 이동하는 시대(Shift of Axis)’에 살고 있다. 과거 금융산업은 자본력과 달러화 체제를 바탕으로 영미계가 주도했다. 이제는 디지털금융, 크라우드펀딩, 핀테크 등 혁신을 통해 정보기술(IT)·모바일 융·복합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금융 DNA가 있다. 돈을 받는 시기와 순서에 따라 이자율과 할인 개념을 적용한 ‘계 문화’가 일찍부터 발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새로운 금융의 장에서 뒤처질 이유가 없다. 30∼50년 후 한국 금융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금융인들이 멀리 보고(look far), 다르게 생각하는(think different) 지혜를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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