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는 웃고 해운사는 울상

  • 동아일보

초대형 컨테이너선 인기에 희비 엇갈리는 두 업계

‘극초대형 선박’ 시대가 도래하면서 국내 조선업계와 해운업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극초대형 선박 기술을 가진 한국 조선소들은 잇따라 수주를 따내고 있는 반면, 극초대형 선박 확보 경쟁에서 밀린 국내 해운업체들은 원가절감 압박과 세계적인 공급과잉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 대형선박 특화된 국내 조선소 ‘순항’


조선업계 분석 사이트 ‘베슬밸류닷컴’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새로 발주된 2만 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급 컨테이너선은 총 26척. 이 중 절반인 13척을 국내 업체들이 수주했다.

3월 삼성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2만100TEU급 컨테이너선 4척을 수주해 ‘2만 TEU 시대’를 연 이후 삼성중공업이 총 10척, 한진중공업 수비크조선소가 3척을 따냈다. 이들 선박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운사에 인도될 예정이다. 1만8000TEU급 선박들도 대부분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소들이 만들고 있다. 일본은 이마바리 조선소가 13척을 수주했다.

국내 조선소들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외에 초대형 유조선(VLCC),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을 바탕으로 국가별 수주량 1위를 지켜나가고 있다. 6일 국제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은 53만3275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를 수주해 1위였다.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30.7%다. 다음은 중국(29만5513CGT) 일본(14만9396CGT) 순이었다. 한국은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월별 수주 실적 1위를 지켜오다 올해 1월에만 일본에 밀렸다. 한국은 대형·친환경 선박 기술로 선전(善戰)하고 있지만, 중소형 벌크선에 특화된 중국은 1∼4월 수주량이 지난해 동기 대비 5분의 1 이하로 크게 줄었다.

○ 해외 발주 쳐다만 보는 국내 해운사들

하지만 ‘2만 TEU급 시대’는 국내 해운사들에는 반가운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까지 2만 TEU급 선박을 발주한 해운사는 MOL(일본), OOCL(홍콩), CMA-CGM(프랑스), 에버그린(대만) 등 모두 외국 업체들이다. 국내 대표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모두 1만3000TEU급이 가장 큰 배다.

초대형 선박은 원가 절감에 유리하다. 한 번에 많은 양의 화물을 싣고 움직이기 때문에 화물당 들어가는 연료비 등이 저렴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물동량이 크게 증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원가 절감은 해운사의 유일한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다.

더구나 선박의 대형화는 심각한 공급과잉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이미 전 세계 해운업계는 해운 수요보다 공급량이 많아 운임을 올리기 힘든 상태. 게다가 유가도 떨어지면서 화주들이 운임을 더 내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대표적인 국제 해운 운임지수인 중국발 컨테이너운임지수(CCFI)는 최근 꾸준히 내려가다 지난주 898.97로 900 선이 무너졌다.

전형진 KMI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요즘의 선박 초대형화 경쟁은 생존전략을 벗어나 ‘치킨게임’ 형태로 나아가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 업체의 선박발주를 지켜만 보자니 원가 절감 경쟁에서 뒤처질 것 같고, 과감히 투자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는 데다 과연 큰 배를 다 채울 화물을 수주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성규 sunggyu@donga.com·최예나 기자
#조선#해운#초대형 컨테이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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