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회식의 꽃’ 폭탄주와 노래방의 공통점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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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탄주 문화는 친해야 하는 사명감과 친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 욕구 사이의 딜레마를 고비용으로 해소해 주는 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것이다. ―도시심리학(하지현·해냄·2009년) 》  

바야흐로 폭탄주의 계절이다. 송년모임에서 선보일 신종 폭탄주 제조법을 연구하는 직장인도 적지 않다. 주뼛주뼛 불편한 느낌이 들거나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 폭탄주는 경직된 관계를 풀어주는 효과적인 촉매다.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저자는 다양한 사람이 만나는 낯선 자리에서 어색함을 녹이는 데 이만한 돌격대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통상 친해지려면 기억을 함께 쌓아야 한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취향을 살피며 성격에서의 궁합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것이 정공법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칫 ‘함께할 사람이 못 된다’는 결론에 이를 위험도 있다. 특히 무조건 일단 ‘우리는 친하다’는 최면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선 정공법으론 한계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바로 이때 폭탄주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일을 같이 하려면 경계심을 무장해제해야 한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통해 알고 있다. 그렇다고 동창들처럼 은밀한 사담(私談)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가까워졌다는 느낌과 개인의 정체성 유지라는 딜레마에 놓일 때 폭탄주는 편리하게 ‘가성(假性) 친밀감’을 형성해준다는 것이다.

노래방이 회식의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노래방에선 사람들은 ‘우리끼리니까 괜찮다’는 상호 용인 속에 철저히 망가질 수 있다. 작은 방에 한꺼번에 들어가 목이 쉬도록 열창하고 땀을 한바탕 흘리고 나면 그날 밤만은 ‘웬일인지 친해진 것 같다’는 찰나적 착각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래방에서 직장인들은 대개 ‘부르고 싶은 노래’가 아닌 ‘불러야 할 노래’를 고른다. 퍼포먼스가 가능하거나 함께 부를 수 있거나. 노래방의 존재 이유를 아는 것이다. 폭탄주와 노래방은 ‘사회 속의 나’와 ‘나로서의 나’가 충돌할 때 우리가 취하는 일종의 대처법이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회식#폭탄주#노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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