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성향 고객에 “고위험상품 투자”… 불완전판매 여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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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그룹 사태 1년… 현장 점검해보니

“투자성향이 ‘위험중립형(3등급)’이네요. 하지만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수익률을 높이려면 좀 더 위험한 상품에 투자하는 게 좋습니다.”

26일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 지점. 동아일보 기자가 영업 직원에게 펀드 가입 상담을 의뢰하자 대뜸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직원은 “원금 비보장형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원금 손실이 난 경우는 없다”며 ‘공격투자형(5등급)’에 해당하는 주가연계증권(ELS) 2종을 슬그머니 내놨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판매사는 투자성향 진단 결과에 적합한 상품을 고객에게 제안해야 하지만 이 증권사 직원은 이런 규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위험 상품을 권유했다.

4만 명이 넘는 피해자를 낸 ‘동양그룹 사태’가 30일로 발생 1년을 맞는다.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의 불완전판매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에 대한 분쟁조정 작업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지만 불완전판매 등 잘못된 관행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증권사 불완전판매


같은 날 기자가 방문한 B증권의 한 지점. 이 증권사도 기자의 투자성향을 위험중립형으로 평가했지만 마찬가지로 5등급의 주식형 펀드를 소개했다. 영업 직원은 “앞으로 소득이 증가할 20, 30대 젊은 고객들에게는 투자성향에 비해 다소 공격적인 상품도 권하고 있다”며 “상품 등급에 맞춰 투자성향을 다시 작성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C증권 지점 관계자는 여러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만 줄줄 소개하더니 “수수료가 절반인 우리 회사 온라인 펀드마켓에서 가입하라”고 권유했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관계자는 “불완전판매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라인 가입을 권유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온라인에서 가입할 경우 투자자 본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동양사태 이후에도 불완전판매 관행이 계속되면서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한 분쟁은 줄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금융투자업계의 민원·분쟁은 1074건(STX·동양사태 등 대량민원 제외)으로, 지난해 하반기(7∼12월) 대비 9% 증가했다. 2012년 하반기 이후 계속 증가 추세다. 최근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불완전판매의 위험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1%라도 금리가 높은 상품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고 업계에서도 영업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감독원이 7월 실시한 미스터리쇼핑(암행 감찰)을 통해서도 불완전판매의 문제점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 위험 등 상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인기 상품을 소개한 뒤 고객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험 등급별로 투자설명서의 색상을 차등화해야 하지만 흑백으로 출력하는 등 동양사태 이후 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불완전판매 종합대책’도 일선 영업현장에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었다.

○ 동양사태 여진 계속…책임지는 사람은 없어

한편 1년이 지났지만 동양사태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구제 절차는 7월 말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일단락됐지만 관련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피해자와 동양증권이 금융당국의 분쟁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수락한 비율은 불완전판매가 인정된 전체 계약건수의 85% 수준(약 1만3000건)이다. 나머지 투자자 318명은 불완전판매 인정비율(약 67%)과 배상비율(15∼50%)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달 초 금감원에 재조정을 신청했다.

여기에다 동양그룹과 동양증권을 상대로 불완전판매가 아니라 사기판매라고 주장하는 집단소송도 제기된 상황이어서 소송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의 허술한 관리, 감독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올해 초 김건섭 전 금감원 부원장이 자진 사퇴한 것 외에는 금융당국에서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영 redfoot@donga.com·박민우·정임수 기자
#증권사 불완전판매#고위험상품#투자#동양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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