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에른 주 뮌헨의 한 시장에서 노인들이 오후부터 맥주를 마시고 있다. 연금제도가 발달한 독일은 노인들이 큰 소득 걱정 없이 노후에도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 뮌헨=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올해 50세가 된 박모 씨는 은퇴 이후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퇴직 후에 받을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을 계산해 합쳐봐야 노후를 살아갈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박 씨의 현재 월급은 약 500만 원 선. 박 씨가 10년 뒤 800만 원의 월급을 받다가 퇴직하고 퇴직연금을 60세부터 받는다고 가정하면 박 씨는 대략 월 100만∼110만 원의 퇴직연금을 받는다. 국민연금은 약 80만 원대다.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을 더해도 월 200만 원이 안 되는 수준이다. 그는 “돈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질 텐데 걱정”이라며 “정부가 퇴직연금에 세제혜택 등 지원을 늘리면 봉급생활자들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퇴직연금 활성화를 골자로 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노후 부담을 줄이기엔 모자라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국이나 독일 등 해외 선진국처럼 정부가 퇴직연금에 대한 지원을 늘려 정부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가입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 퇴직연금 선진국들, 적극적인 재정 지원
유럽 국가들은 근로자들의 노후 생활을 위해 퇴직연금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2007년 연금개혁을 통해 ‘네스트(NEST·국가퇴직연금신탁)’ 제도를 도입했다. 네스트는 종업원 수와 관계없이 모든 회사들이 의무적으로 퇴직연금에 가입하도록 하고 정부는 보조금을 제공하는 제도다. 근로자가 임금의 4%를 퇴직연금으로 내면 기업이 3%를 내고 국가가 1%를 내주는 방식이다.
영국 정부가 이처럼 퇴직연금에 대한 지원에 적극 나선 것은 재정 부담은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가재정에 이득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랍 율 영국보험자협회(ABI) 국제담당 정책자문역은 “영국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저금리와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다”며 “정부는 근로자들을 위해 네스트를 도입했고 현재도 네스트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여러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퇴직연금으로 은퇴 직전의 소득을 충분히 메울 수 없는 가입자를 위해 개인연금 지원책을 운영하고 있다. 독일에는 근로자 또는 영세사업자 부부가 가입할 수 있는 개인연금인 리스터(Riester) 연금이 있다. 2002년에 도입된 이 연금은 근로자들이 내는 돈에 정부 보조금을 얹어 지급하며 자녀 수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정부 보조금은 소득에 따라 전체 납입액의 33∼92%가 지급된다.
2005년에 리스터 연금에 가입한 디르크 파벨스 씨(44)는 “독일은 사회보장이 잘돼 있지만 갈수록 연금을 받는 사람은 많아지고 세금을 내는 후손들은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며 “리스터 연금은 정부 지원이 있는 데다 정부가 원금을 보장해 준다는 장점에 끌려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 한국도 정부 지원 늘려야
정부는 지난달 27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기업의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정책의 주요 내용은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해 2022년까지 모든 사업장이 퇴직연금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 대책은 기존의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았을 뿐 정부가 연금 수혜액을 늘리거나 가입자 납입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 담겨 있지 않다. 300만 원의 추가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에게만 한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노후 세대 부양을 위한 정부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퇴직연금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퇴직연금으로 부족한 부분을 개인연금을 활성화해 채우자는 제안도 제기되고 있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실장은 “정부가 퇴직연금제도 개선방안을 내놨지만 저소득 근로자나 영세사업자를 위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며 “의무가입이라고 해도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않는 사업장에 과태료만 부과하고 인센티브가 없으면 퇴직연금 활성화를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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