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밝힌 DDP 앞에 불 꺼진 ‘K-패션 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일 03시 00분


관광객 북적이는 DDP와 달리… 한산한 동대문 패션타운 가보니

매장 곳곳이 비어 있는 굿모닝시티 쇼핑몰 지하의 모습.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매장 곳곳이 비어 있는 굿모닝시티 쇼핑몰 지하의 모습.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지난달 30일 오후 8시 서울 중구의 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인근. 토요일 밤인 데다 일주일 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문을 연 영향으로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사거리 바로 앞에 있는 한 패션쇼핑몰은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산한 느낌이 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4층과 6층, 7층에는 아예 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도록 천막이 쳐져 있었다. 이곳을 찾은 주부 최선아 씨(40)는 “몇 년 만에 들렀는데 영업을 안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 1세대 소매 패션몰 상당수 침체


인근에 있는 밀리오레는 상황이 좀 나아 보였다. 중국,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하지만 위층으로 좀 올라가니 군데군데 비어 있는 매장들이 나타났다. 한 상인은 “5년 전만 해도 비어 있는 매장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했다”고 했다. 가방이나 지갑 등 잡화를 파는 매장에는 지드래곤, 이민호 등 한류 스타들의 화보들이 걸려 있었다. 아예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한류 상품 매장으로 ‘업종 전환’을 한 것이다.

1997년 문을 연 거평프레야(현 케레스타)와 밀리오레(1998), 두타(1999) 등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1세대 소매 패션쇼핑몰들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보세 옷이나 신진 디자이너가 만든 감각적인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해 특히 10, 20대 등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헬로apM, 패션TV, 라모도 쇼핑몰, 굿모닝시티 쇼핑몰 등 ‘후발 주자’들이 생겨나고 밀리오레는 경기 수원, 광주, 대구 등 지방에도 진출했다.

하지만 1세대 소매 패션몰들 중 상당수는 지금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라모도 쇼핑몰과 케레스타는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중국 상인들이 몰리는 도매 시장 쪽이나, 패션 소매점들 앞에서 노란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하는 짝퉁상품 야시장이 오히려 장사가 더 잘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어떤 곳은 공실률이 50%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 문제는 심각하지만 대안은 ‘글쎄’

1세대 소매 패션쇼핑몰을 대표했던 밀리오레는 사실 오래전부터 위기에 처해 있다. 밀리오레를 운영하는 성창F&D의 2012년 매출액은 62억 원으로 5년 전(2102억 원)의 33분의 1로 줄었다. 지난해 매출액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개선됐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유종환 성창F&D 대표의 집은 지난해 말 경매 매물로 나왔다.

1세대 패션쇼핑몰의 위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온라인쇼핑몰의 득세, 유니클로 등 해외 제조유통일괄형 의류(SPA) 브랜드의 인기, 대기업 유통회사들의 아웃렛 진출 등 유통환경의 변화를 이유로 들었다. 동대문수출지원센터의 한 관계자는 “동대문 패션쇼핑몰의 가장 큰 장점이 가격이 싸다는 것이었는데, SPA 브랜드나 아웃렛 매장에서 판매되는 유명 브랜드 의류 가격이 동대문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 치명적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점원들의 불친절한 태도도 문제점 중 하나로 꼽힌다.

패션쇼핑몰 자체의 경영·마케팅 능력의 부재에 대한 지적도 있다. 1세대 소매 패션쇼핑몰은 대부분 등기분양 형태로 전체 운영 주체가 없다. 동대문 패션가에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두타는 두산그룹이 전체 매장을 관리하는 ‘프로듀서’의 역할을 하고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해 나름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패션e셀러개발원의 한경구 원장은 “동대문 패션몰들은 경영전문가를 영입해 회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많은 전문가가 문제점을 제기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게 문제”라며 “차라리 특화된 상품 몇 가지에 집중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고 밝혔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DDP#동대문 패션타운#동대문디자인플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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