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족이 닦은 ‘맛 길’… 3세대 상권으로 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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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교통 → 패션 → 음식順 진화
수도권 4대 ‘테이스트 로드’ 가보니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 뒤편 언덕 골목길. 스마트폰을 손에 쥔 20대 여성 2명이 눈길에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들이 찾은 곳은 지난해 말 문을 연 카페 ‘알베르’.

직장인 김아름 씨(25·서울 성동구 옥수동)는 “친구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보니 인테리어가 예뻐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말했다. 특별한 이름 없이 ‘신논현역 카페 골목’으로 불리던 이 길은 지난해부터 카페 주인들의 합의하에 ‘언덕길’로 불리기 시작했다. 김 씨 같은 20대에게 언덕길은 요즘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다.

같은 시간 서울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출구에서 성북초 방향으로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성북구 성북동의 ‘성북동길’에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언덕길 맛집들과 달리 이곳에는 소박하지만 정갈한 느낌의 한식당이 많다.

○ 스마트폰 따라 뜨고 지는 길

최근 수도권에서 ‘뜬다’ 싶은 신흥 상권의 뒤에는 레스토랑 카페 등 맛집이 있다. ‘1세대 상권’이 명동, 강남역 등 교통 요충지를 중심으로 발달했다면 ‘2세대 상권’은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처럼 대형 의류매장 중심으로 형성됐다. 요즘 뜨는 ‘3세대 상권’은 맛집을 중심으로 한 ‘테이스트 로드(taste road)’의 특성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 회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와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에 따르면 이러한 3세대 상권들로는 서울 역삼동 ‘언덕길’과 성북동 ‘성북동길’, 용산구 한남동 옛 단국대 터 일대를 가리키는 ‘한남동 뒷길’,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의 ‘백현동 카페거리’가 대표적이다. 김성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이사는 “새롭게 뜨는 거리는 기존 상권의 필수 조건으로 꼽혔던 대중교통 여건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맛집 정보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스마트폰으로 길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 ‘숨은 진주들’은 어디에

최근 2년 새 유명 맛집과 카페들이 속속 들어선 역삼동 언덕길은 6, 7년 전만 해도 사주나 타로카드로 점을 봐주는 곳들이 밀집한 주택가였다. 이 길이 거듭난 것은 홍익대 앞에서 ‘대박’을 친 ‘돈부리집’을 비롯해 ‘서가앤쿡’ ‘미즈컨테이너’ ‘오톤스테이션’ 등 레스토랑이 하나 둘 문을 열면서다.

이곳에서 카페 ‘알베르’를 운영하는 신현성 대표는 “강남역, 가로수길처럼 유행을 선도하면서도 더 고즈넉한 분위기라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며 “최근 1년 새 유동인구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성북동길은 이제 막 상권이 형성되는 단계다. 인근 N부동산 관계자는 “삼청동이 포화되자 자연스레 넘어온 식당들도 있지만 소박하면서도 멋스러운 성북동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곳에 둥지를 트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용산구 한남동의 주상복합 리첸시아와 고급 주택단지 ‘한남더힐’ 사이 길을 지나 유엔빌리지 입구 맞은편까지 이어지는 ‘한남동 뒷길’은 지난해 여름 이후 본격적으로 입소문을 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불편해 이 지역 식당들은 대부분 주차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태원·한남동 인근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는 홍보대행사 커뮤니크의 신명 대표는 “이태원은 번잡스럽고 강남 일대는 ‘애들이 노는 곳’으로 인식하는 세련된 30, 40대들의 비밀스러운 아지트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백현마을 단독주택가 형성과 더불어 성장한 판교의 ‘백현동 카페거리’는 40, 50대 여성들이 많이 찾아 ‘예쁜 미시족들의 거리’로 통한다.

‘3세대 상권’이 뜨면서 부동산 임대료도 껑충 뛰었다. 백현동 카페거리는 1년 전 100m² 점포 기준으로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300만∼350만 원대였지만 현재는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400만∼500만 원 수준으로 올랐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홍유라 인턴기자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테이스트로드#엄지족#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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